후배 꼬셔 병원 넘기더니…아래층에 개업한 나쁜 선배 '철퇴'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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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1.02 07:14 수정2025.11.02 07:14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후배를 설득해 병원을 넘기고 불과 2년 후 같은 건물 아래층에 병원을 개업한 정형외과 전문의가 '10년 동안 같은 도시에서 개업 금지'라는 철퇴를 맞았다. 후배에게 경쟁 업체를 차리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부여해 개업한 것은 경업금지 위반이라는 의미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정형외과 개업의 B씨가 과거 선배 의사인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경업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고의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건강 악화에 병원 팔더니…회복하자 "돌려달라"

대전 소재의 한 건물주이자 4층에서 정형외과를 운영 중이던 전문의 A는 2014년경 뇌동맥류 수술을 받고 장애를 얻었다. 휴식이 필요해진 A는 제주에서 일하던 후배 B에 병원 인수를 제안했다. 후배가 주저하자 "건물주인 내가 건물 문제로 속을 썩이지도 않을 것" "모르는 사람 보다 내 걸 받아라며 집요하게 권유했다.

결국 후배 B는 A로부터 2016년 권리금 2억5000만원 등 4억여원 등을 지급하고 직원 등 사업 일체를 넘겨받았다. 4, 5층 임대차보증금 2억, 월 차임 700만원으로 3년간 임대하는 조건도 포함이었다. 양도계약 후 A는 후배에게 "잘해라. 내 전부를 준 거여"라고 메시지도 보냈다.

그런데 A는 2018년 건강이 회복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2018년 11월 후배에게 '월 임대료를 2000만원으로 올리고 그간 받지 않던 관리비 월 250만원도 내라'고 요구하더니, 이후 노골적으로 "병원을 다시 넘기라"며 본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B가 병원을 넘기지 않고 버티자 2021년 6월 건물 2층에 동일한 정형외과 의원을 개원했다. 선배의 횡포를 버티지 못한 후배 B씨는 영업상 피해를 입고 100미터 떨어진 건물로 이전했다.

결국 후배 B씨는 A씨를 상대로 '경업 금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경업금지란 경쟁 업체를 설립·운영하는 등 경쟁행위를 하지 아니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약정이다.

다만 계약서에 명확한 경업 금지 조항이 삽입되지 않아 쟁점이 됐다. 이 때문에 B는 병원 양도계약에도 상법 제41조가 유추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상법 41조는 '영업을 양도한 경우 양도인은 10년간 동일한 시·군과 인접 시·군에서 동종영업을 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명시적인 계약 조항은 없더라도 계약의 성격과 직무 특성상 경업이 금지된다는 '묵시적 경업금지 약정'이 인정된다고도 주장했다.

동시에 B는 A가 운영 중인 병원을 폐업하고 양도 계약일로부터 10년이 되는 2026년까지 대전서 경쟁 병원을 차리지 못하게 해달라고 청구했다. 동시에 권리금 2억9000만원, 매출감소액 3억원, 병원 이전 비용 및 위자료 등 합계 8억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법원 "10년 동안 대전서 개업 금지"

1심 재판부는 병원 운영은 상행위가 아니라는 이유 상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영업금지·영업폐지 주장을 기각했다. 묵시적 경업금지 의무가 있다는 주장은 일부 인정하되, 경업금지의 범위를 '같은 건물'로 제한했다.

하지만 2심 법원 판단은 달랐다. 먼저 법원은 "의료행위의 1차 동기가 공익이 아닌 사익인 이상, 상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상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바탕으로 "A는 현재 운영 중인 영업을 폐지하고, 영업 양도일부터 10년간 대전광역시와 인접 시군서 정형외과 의원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묵시적 경업금지 범위도 1심보다 확대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전부이자 평생 이룬 사업을 승계해 준다는 A의 태도에 B는 A가 다시 정형외과를 운영할 생각이 없음을 신뢰하고 양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라며 "경업금지가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가까운 선배가 몇 년 안돼 돌변해 같은 건물에 정형외과를 개설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라고 판단했다. A의 개업으로 인한 병원 매출 감소액도 인정해 배상금도 1심에 비해 4억원 가까이 늘어난 5억1000여만원으로 책정했다. 대법원도 해당 판결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그간 대법원과 하급심 법원에서는 의사가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은 상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상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경업금지 의무에 대한 해석을 한층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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