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문을 여는 부산오페라하우스가 개관작으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의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를 초청하는 것을 두고 지역문화계 안팎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와 일부 예술인 단체에서 “전시 행정 성격이 강한 해외 프로덕션 초청”이라고 비판하면서다. 이에 대해 공연계 일각에서는 “한국 공연 제작 시스템의 수준을 끌어올릴 기회”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6일 한경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시는 이번 라 스칼라 프로젝트에 총 105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클래식부산(대표 박민정)이 부산시에 제출한 업무협약서에 따르면 2027년부터 부산 오페라 하우스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오페라 및 공연예술 콘텐츠 교류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관련 사업 협력 △개관 기념 공연 준비 및 홍보 △기타 공연예술 협력 사업 등을 함께 추진한다.
개관 시즌에는 예술감독 정명훈의 지휘로 <오텔로> 3회 공연과 베르디 레퀴엠,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콘서트 등 총 5회 공연이 예정됐다. 공연당 평균 초청비는 약 21억 원 수준이다.
이에 대해 지역 시민단체와 일부 예술계는 반발하고 있다. “지역 예술인 지원 예산보다 더 큰 돈을 해외 유명 극장 프로덕션 초청에 투입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이 문제로 제기한 것은 단순히 초청료뿐만 아니다. 대규모 해외 프로덕션 초청이 반복될 경우 향후 지역 예술인 창작 지원 예산을 위축시키고, 이벤트 중심의 ‘전시 행정’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는 시장에 취임할 경우 박형준 부산시장이 추진해 온 프랑스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건립과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공연 예산 집행을 즉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이 부산 문화정책 전반을 둘러싼 정치·행정적 쟁점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반면, 공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혈세 낭비’ 프레임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오페라 제작 관계자는 “라 스칼라의 진짜 경쟁력은 브랜드보다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제작 운영 시스템에 있다”며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배워야 할 것도 결국 오페라 제작의 문법”이라고 말했다.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들은 재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추진하던 대규모 후원 협약이 무산되며 공연 시즌 축소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라 스칼라 역시 2010년대 초 유로존 재정위기와 이탈리아 경제 침체 속에서 제작 편수를 줄이고 긴축 운영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세계 공연 산업에서 이들 극장들이 여전히 저력을 갖고 있는 이유는 수백년간의 노하우가 축적된 ‘제작 시스템’이다. 국내 오페라 연출자는 “오페라는 단순히 성악가와 오케스트라만으로 완성되는 장르가 아니다”며 “무대 전환 기술과 조연출 체계, 장기 리허설 운영, 무대 제작 공방(workshop) 시스템, 의상·세트 아카이브, 기술 감독 구조까지 축적돼야 비로소 하나의 프로덕션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오페라계는 아직 세계 일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프로젝트 단위 제작 구조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공연이 끝나면 제작 인력과 경험이 흩어져 시스템이 축적되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됐다. 이번 프로젝트를 단순히 ‘수입 공연’이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제작 시스템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 유명 프로덕션 초청 자체가 세계 공연계에서 특별한 사례는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올해로 54회를 맞은 홍콩아츠페스티벌은 해외 오페라와 발레 프로덕션을 꾸준히 유치하며 성장해왔다. 서울 예술의전당도 매년 해외 오페라 프로덕션을 수입해 공연을 올린다. 국내 공연 기획사들도 세계 정상급 악단의 내한 공연을 주최하고 있다.
공연계 일각에서는 독일을 대표하는 한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초청료가 15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대 세트와 제작 시스템 전체가 움직이는 라 스칼라 프로젝트 비용을 단순히 금액만 보고 비난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 사례를 언급하는 관계자들도 있다. 한국 뮤지컬 시장 역시 초창기에는 해외 오리지널 라이선스와 투어 프로덕션 의존도가 높았지만, 장기간 해외 제작 시스템을 경험하며 자체 제작 역량을 키워왔다는 설명이다.
뮤지컬계 관계자는 “뮤지컬 <캣츠> 내한 당시 배우들이 서울 시내 호텔 피트니스룸에서 러닝머신 위를 기어다니며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단순 퍼포먼스가 아니라 고양이과 동물의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구현하기 위한 훈련이었다”며 “무대 위 결과물뿐 아니라 움직임과 근육 사용까지 집요하게 연구하는 과정 자체가 세계적 수준의 제작 노하우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클래식부산 측은 라 스칼라와 연계한 라이브 스크리닝과 지역 예술인을 위한 마스터클래스, 교육 프로그램, 무대 스태프 인턴십 과정 등도 함께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페라계 관계자는 “105억원의 가치는 결국 세계적 수준의 운영 노하우가 국내 시스템으로 정착되느냐에 달렸다”며 “개관 페스티벌 이후 광역 공연 전문가들로 꾸려진 평가단이 참여한 성과 평가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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