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제한 완화 움직임에
뿌리산업은 앞길이 막막
외국인 인력에 의존한 中企들
지방공장은 몇년째 고용 못해
의무기간 폐지땐 대란 불보듯
고용허가제 개편 앞두고 분통
"영세 제조업 인력도 고려를"
"외국인 고용 쿼터 풀어줘야"
최근 찾은 경기 김포 학운4일반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 전자석 크레인이 들어올린 고철 스크랩이 용해로에 들어가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크레인 조종도, 쇳물에 페로실리콘 가루를 한 바가지 들이부어 화학 성분을 맞추는 작업도 모두 스리랑카에서 온 30대 외국인 노동자의 몫이었다.
이 공장 곳곳에서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고철을 녹여 산업기계 소재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직원 39명 가운데 30명이 스리랑카·미얀마·라오스·네팔 등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다. 이 회사는 현재 60대 내국인 직원들이 관리직을 맡고 있고, 현장 생산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담당하는 인력 구조로 짜여 있다. 20·30대 내국인 생산직 직원은 아예 없다. 젊은 내국인 직원을 마지막으로 채용한 때는 무려 20년 전이다.
김포공장 현장에서 만난 이 회사 대표는 "처음 입사한 외국인 근로자는 3개월 정도 지나야 한 사람 몫을 하고, 6개월은 돼야 내국인 수준의 생산성이 나온다. 숙련공이 되려면 최소 1년은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고용허가제는 기본적으로 3년 근무가 보장되기 때문에 그나마 기업 입장에서 교육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채용 1년 뒤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면 주물업체는 훈련만 시키다 끝나는 셈이라 공장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 발표를 앞둔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까지 '외국인력 통합지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 제도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가 제도 개편에 나선 것은 지난해 전남 나주의 벽돌공장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가 지게차에 묶여 괴롭힘을 당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고용노동부는 법무부 등과 논의를 거쳐 이르면 7월 중 해당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의 경우 최초 사업장에서 3년간 근무하되 휴·폐업, 사업주의 폭행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총 3회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변경 시에도 사업장이 속한 권역(수도권, 경남권, 경북·강원권, 전라·제주권, 충청권) 내에서만 이동할 수 있다.
◆ 비수도권 지역 기업 '비상'
중소기업계는 국내 뿌리산업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현재도 최초 취업 활동 기간 3년을 채우지 않은 채 일이 더 쉽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하려는 외국인 근로자들 때문에 공장 운영이 힘들다고 중소기업계는 호소했다.
비수도권에 위치한 중소기업들은 지금도 수도권 대비 인력난이 절망적일 정도로 심각하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권역 간 이동이 완화되면 비수도권 공장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도는 것이다.
충북 진천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 철근 가공업체 대표는 최근 절단과 절곡을 담당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퇴사를 앞두고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절단수'로 불리는 종사자로, 철근 손실을 최소화하는 절단 계획을 직접 세우는 고급 기술직이다. 이 업무는 1년 이상의 숙련 기간이 필요하다. 이 업체 대표는 "비수도권에서 의무 근무 기간을 1년 정도로 줄이면 기술만 익히고 더 쉬운 업종이나 도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며 "사업장 이동을 확대한다면 그만큼 외국인 고용 한도를 완화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는 생산직 8명 가운데 6명이 필리핀 출신 외국인 근로자다. 직원을 더 늘리고 싶지만 채용 자체가 힘들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채용 포털 '고용24' 등에 꾸준히 구인공고를 내지만 몇 년째 지원 문의 자체가 거의 없다"며 "간혹 문의가 와도 대부분 실업급여 수당을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지원한 사례"라고 밝혔다.
◆ 외국인 노동자 잦은 이직 요구
외국인 노동자의 인력난 문제는 뿌리산업뿐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 전반에 만연하다. 전남 여수에서 김치를 생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30명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했지만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며 "업무를 제대로 배우는 데 최소 1년에서 1년6개월이 걸리는데, 대부분 입사 후 2년 뒤 퇴직금을 받고 귀국하거나 사업장을 옮긴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률적으로 이동 규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업종별·지역별로 인력 수급 문제를 고려해 조건부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 외국인 고용인력 쿼터 늘려야
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전반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제조업은 내국인 근로자 수(고용보험 피보험자 수)에 따라 E-9 외국인 근로자 고용 인원이 제한된다. 가령 내국인 근로자가 1명 이상 10명 이하인 사업장에서 '내국인 수+10명'까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력난을 겪는 대다수 중소 제조업체는 내국인 1명을 채용한 뒤, 외국인 근로자를 최대 11명까지 고용한다. 동일 사업장 내 법인을 여러 개로 운영하면서 고용 한도를 늘리기도 한다.
숙련기능인력(E-7-4) 비자의 쿼터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E-7-4는 E-9 등으로 일정 기간 근무한 외국인이 고용주의 추천을 받고, 연봉·한국어 능력·경력 등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하면 전환할 수 있다. 체류 기간은 2년 단위로 부여되고 장기 체류가 가능해진다. 다만 사업장별 고용 가능 인원은 내국인 근로자 수의 30%(특례 대상은 50%) 이내로 제한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장기근속한 숙련 인력이 빠져나가면 공장 운영이 어려워지고 사업에 미치는 피해가 크다"며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에 조건부로 추가 쿼터를 부여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훈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력지원실장은 "고용허가제 개편은 국내 노동시장과 지역 여건을 고려해 영세 제조업체의 인력 수급과 외국인 근로자의 숙련 형성이 함께 이뤄지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포 이윤식 기자 / 서울 서정원 기자 / 진천 양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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