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시간은 거꾸로 갔다
피카소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화가로 불리지만, 그의 대표작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종종 당황한다. 형태가 비틀리고 색이 어긋난 그림들이 마치 어린 아이가 대충 그린 것처럼 보여서다.
하지만 이는 실력 부족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이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미 10대 초반에 이미 명암과 원근감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식에 통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13살 때 그의 스케치를 본 미술교사 아버지가 "이미 내 재능을 넘어섰다"고 인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피카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는 당시 막 시작에 불과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도전하고자 했던 건 오히려 '아이처럼' 그리는 법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선, 그것이 바로 피카소가 화폭에 담고자 한 정신이었다.
"평생 아이처럼 그리고 생각하는 방법에 몰두" 오늘날 미술계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유
피카소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과 자유로움을 동경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피카소의 화풍은 점점 더 파격적이고 도발적으로 변모했다. 전통적인 서양 미술에 반기를 들며 고전적 아름다움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지극히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필치로 자신의 내면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예술가로서 그의 여정은 그가 전한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It took me four years to paint like Raphael, but a lifetime to paint like a child"(내가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는 고작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우울한 빈민가의 풍경을 그렸던 청색 시대를 거쳐, 방랑자의 자유를 노래했던 장밋빛 시대를 지나, 기하학적 면으로 대상을 해체한 입체주의(큐비즘)를 탄생시키기까지. 피카소의 변화무쌍한 화풍은 전통을 파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한 그의 치열한 예술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사건을 다룬 ‘게르니카’는 피카소 입체주의 화풍이 담긴 대표작이다.
평생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 피카소의 도전은, 회화의 본질과 한계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었고 결국 20세기 현대 미술사에 커다란 반향을 남겼다.
4천여 점의 도예 작품…공방에서 열매 맺은 예술가 정신
회화에서 정점을 찍은 피카소가 새로운 무대로 택한 것은 흙이었다. 60대 후반에 접어든 거장은 도예가로서 예술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46년 여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발로리스에 들른 피카소는 도예가 부부 조르주 라미에를 만나 도자기에 매료되었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흙이 손을 거쳐 도자기로 구워져 나오는 과정에 매료된 그는 1948년 발로리스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1955년까지 무려 4000여 점의 도예 작품을 쏟아냈다.
‘A.R. 1: Joueur de diaule (아울로스 연주자)’는 피카소 도예 작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대 그리스 악기를 연주하는 이 인물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 보인다. 전쟁이라는 억압에서 벗어나 되찾은 자유와 삶에 대한 환희가 묻어난다.
‘A.R. 407: Visage et hibou (얼굴과 부엉이)’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이 혼재된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릇의 전면과 후면에 각각 얼굴과 부엉이를 단순화한 선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며,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유머와 해학이 돋보인다.
‘A.R. 437: Quatre visages (네 개의 얼굴)’에서는 하나의 도자기에 서로 다른 네 개의 얼굴이 어우러지며 입체파(Cubism)의 정수를 보여준다. 기하학적인 조형을 통해 사물을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피카소 특유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그가 빚은 도자기 작품들은 단순히 실용적 물건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다. 흙이라는 물성 자체가 주는 특유의 질감과 우연성은 피카소에게 또 다른 영감을 선사했고, 그의 창의력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폭발했던 것이다.
현재 피카소가 선보인 도예 중 110여 점은 이랜드뮤지엄이 국내에 소장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 개관을 앞둔 강원도 고성의 프리미엄 회원제 리조트 그랜드켄싱턴 설악비치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약 300평 규모로 신설되는 전시 공간은 단발성 기획전이 아닌 상시 관람이 가능한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며, 국내외 호텔·리조트 업계 최초로 박물관급 컬렉션을 상설 전시하는 시도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랜드뮤지엄

3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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