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9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힌드 라잡의 목소리’는 무려 23분 동안 이어진 박수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러닝타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마치 “누가 더 오래 서 있느냐”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영화제의 기립박수에는 단순한 흥행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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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걷고 있는 박찬욱 감독(사진=AP) |
그렇다면 ‘시간’은 누가 잴까. 칸이나 베니스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는 취재기자와 배급사 관계자들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부터 시계를 켠다. 버라이어티나 데드라인 같은 해외 매체는 “○○분 기립박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고, 카메라는 감독과 배우의 눈물, 관객의 환호를 빠짐없이 포착한다. 이 과정 자체가 영화제의 볼거리이자 일종의 홍보 전략인 셈이다.
오래 박수를 받는다고 반드시 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200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22분 기립박수를 받은 ‘판의 미로’는 황금종려상을 놓쳤다. 반면 2023년 베니스에서 10분 남짓 기립박수를 받은 ‘가여운 것들’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영화계 관계자는 “기립박수는 수상과 직접적 관련은 없고 주로 거장에 대한 예우”라며 “다만 화제를 모으면 흥행에 간접적으로 힘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화가 점차 퍼포먼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이 두 손 모아 감사 인사를 하거나 배우가 눈물을 보이는 순간, 관객은 쉽게 자리에 앉지 못한다. 박수는 작품의 완성도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 스타 파워, 현장의 분위기까지 함께 반영한다. ‘어쩔수가없다’의 9분은 박 감독의 국제적 위상과 작품의 울림이 만들어낸 순간이었다면, 가자지구 비극을 다룬 영화 ‘힌드 라잡의 목소리’를 향한 23분은 현실의 비극에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마음이 폭발한 결과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맥락’이다. 몇 분을 받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가다. 영화제의 기립박수는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