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원인을 설명해주는 경제학 용어가 ‘보멀 효과(Baumol Effect)’이죠.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향상될수록 서비스 비용은 오히려 더 오르는 아이러니를 뜻하는데요. 달리 표현하자면 ‘에어컨은 저렴해지고 에어컨 수리비용은 비싸지는’ 시대랄까요. 기술혁신과 보멀효과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6월 12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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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이 만든 가격 파괴
사람들은 무엇이 가장 시급한 경제적 과제라고 생각할까요. 이런 설문조사를 하면 항상 1위는 ‘물가안정’입니다. 올해 3월 리서치뷰의 여론조사도,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 설문조사도 모두 마찬가지였죠.그럼 물가가 그렇게나 많이 뛴 걸까요. 조금 장기로 통계를 뽑아볼게요. 지난 20년간 근로자 평균 월급은 85.3% 뛰었고요,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57.6% 상승했어요. 그러니까 물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더 빨리 임금이 올랐습니다.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생활이 더 풍요로워졌단 뜻이죠.
아니, 뭔가 이상하다고요? 한번 우리가 쓰는 물건 가격을 따져보세요. 의외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는 제품이 많습니다. 예컨대 모나미 153 볼펜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 자루에 200원대에 살 수 있고요. 청바지 한 벌은 20년 전 동네 옷가게에서 3만원대였는데, 지금도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선 3만원대에 팔죠. 다이소에 가면 플라스틱 반찬통은 여전히 1000원이고요.
가전제품은 더 합니다. 20년 전에 당시 가장 큰 55인치 벽걸이 TV는 700만원 가까이하는 ‘부의 상징’으로 통했는데요. 요즘엔 75인치 LED TV도 200만원이 채 안 됩니다. 화질 차이까지 생각하면 가격이 폭락한 거나 마찬가지죠.통신요금은 또 어떤가요. 2006년은 아직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의 피처폰 시대였고요. 당시 피처폰으로 노래 한 곡 다운받으면 최소 3000원, 뮤직비디오 한 편 다운받으면 십 수만원의 요금 폭탄이 터졌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월 6만원이면 데이터 무제한인 요금제도 있잖아요. 이걸 ‘데이터당 요금’으로 환산해보면, 상당히 극적인 가격 파괴가 벌어진 겁니다.
항공권도 마찬가지죠. 20년 전엔 국제선에 취항한 국내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밖에 없었고요. 일본 한번 가려고 해도 왕복 항공권이 40만원은 넘었는데요. 저가 항공사가 여럿인 지금은 20만원대에도 가능합니다.
이게 모두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화가 확대되면서 생산성이 극적으로 향상된 경제발전의 성과라 하겠는데요. 하지만 선뜻 이에 동의하게 되질 않습니다. 도대체 그럼 왜 이렇게 다 비싸게만 느껴지는 거죠?
사람 손 닿을수록 가격은 폭등
1977년 사후에 출간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자서전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나는 차를 소유할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동시에, 차는 살 수 있으면서 가정부는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이다.”가정부는 삶의 필수품인데 자동차는 꿈도 못 꿀 사치품이었던 1920년대를 회고하면서 남긴 얘기인데요. 50년 전 책 속의 문구가 지금의 물가 상황과도 너무나 잘 들어맞습니다.다시 20년 전과 지금의 물가를 비교해볼게요. 대량생산되는 공산품 가격은 분명 떨어졌는데 짜장면, 냉면 같은 외식 물가는 두세배로 뛰었고요. 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커트 비용이 이제 2만원을 웃돕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집이라면 아이돌보미 비용(시급 1만3000~1만5000원)이 3배 정도로 뛰면서 이제 부부 중 한 사람 월급은 다 나갈 정도이고요. 20년 전 하루 5만~6만원이었던 간병비도 이제 15만원 가까이 돼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죠. 한마디로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지 않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서비스 분야일수록 가격은 무섭게 뛰었습니다.
공산품 가격은 날로 저렴해지는데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비용은 갈수록 비싸지는 현상. 도대체 왜 생겨날까요. 경제학자 윌리엄 보멀은 1966년 낸 논문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에서 이를 분석했는데요.
기술 발전으로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1965년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는데 드는 노동력은 1865년과 똑같았습니다. 즉, 경제학적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생산성은 전혀 향상되지 않은 거죠. 그런데도 전문 바이올리니스트의 임금은 1865년보다 훨씬 높았어요. 왜? 임금을 높이지 않으면 음악가들이 조건이 더 좋은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날 테니까요. 그들이 계속 연주를 하게 하려면, 생산성과는 상관없이 임금을 높여줘야만 하는 거죠. 결과적으로 산업혁명으로 이후 제조업에서 일어난 혁신과 발전이 제조업은 물론이고, 아무 상관없어 보였던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득까지 증가시킨 겁니다.
이렇게 생산성 증가율이 높은 산업의 임금 상승에 따라 생산성이 정체된 산업의 임금까지 상승하는 것. 이를 경제학에선 ‘보멀 효과’ 또는 ‘보멀의 비용병(Cost Disease)’이라 칭하죠.
이를 접목시켜보면 왜 미용실 커트비나 아이돌보미와 간병인 비용이 점점 뛸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용사는 기술적으로 숙련된다고 해도 한 번에 한 사람 머리밖에 자를 수 없고요. 아이돌보미나 간병인이 하는 일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무리 디지털과 AI 기술이 발전한들 생산성을 높이긴 어려운 분야이죠.
그럼 생산성이 그대로니까 임금도 올릴 필요가 없느냐? 그건 아닌 거죠. 그랬다간 미용사가 될 청년들이 차라리 돈 잘 버는 제조업 분야를 택하겠죠. 간병인 할 인력이 쿠팡을 선택할 거고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임금을 다른 업종에 맞춰 줘야만 하고요.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서 보자면 받는 서비스는 그대로인데 비용은 점점 비싸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 분야는 좀처럼 소비를 줄이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맞벌이가 늘면서 외식이나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죠. 결국 제조업과 첨단 기술산업의 생산성과 임금 수준이 높아질수록 서비스 비용도 덩달아 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AI 로봇에 헤어컷을 맡기거나 아기 기저귀 가는 일을 시키는 시대가 되지 않는 한 말이죠.
AI 로봇은 구원이 될까
존 콜리슨 스트라이프 공동창업자는 이렇게 농담처럼 말한 적 있어요. “오늘날 미국에 살고 있다면, 벽에 구멍이 났을 때 벽을 고칠 수리공을 부르는 것보다 평면 TV를 사서 구멍 앞에 놓는 게 더 저렴할 겁니다.”좀 과장되긴 했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죠. AI와 자동화로 산업현장의 생산성이 극적으로 향상되고 관련 제품과 서비스 가격이 내려갈수록, 기술혁신이 미치지 못한 분야는 상대적으로 더 비싸질 겁니다.
그리고 이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환자 입장에선 간병비가 오르는 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간병인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니까요. 어찌 보면 보멀 효과는 기술혁명과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번영이 주변으로 퍼져나가서 모두 함께 성장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럼 AI 시대에도 피할 수 없는, 어쩌면 더 가속화될지 모르는 서비스 비용의 급등을 소비자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바로 이와 관련해 제시된 전혀 다른 두가지 해법이 흥미로운데요.
하나는 기술주의적 시각입니다. AI 기술 발전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는 거죠. 앤드리슨호로위츠의 알렉스 단코는 이렇게 강조했어요. “(AI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는 ‘마지막 1%의 인간 취업 가능 기술(예를 들어 개 산책)’이 남을 겁니다. 그 지점까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때까지는 (AI 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집중합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풍요로운 사회로 만들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지금은 보멀효과가 나타나는 영역 중 상당 부분까지 기계화, 자동화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릴(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을 거라 보는 겁니다. 이를 테면 간병 로봇 같은 기술이 그런 사례가 되겠죠.
다른 하나는 심리학적 접근, 즉 ‘정신 승리’인데요. 롤랜드 프라이어 하버드대 교수(경제학)는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이렇게 조언했어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없는 삶을 상상해보세요. 1975년을 떠올려 보면, 에어백도 없고, 강도 당할 위험도 훨씬 높았고, TV 방송국은 세 개뿐이었죠. 우린 이런 변화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더 이상 변화처럼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중산층 행복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육아비용이 아니라,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알아차릴 여유조차 없다는 겁니다.” 경제구조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대신 과거보다 나아진 부분에 집중하는 게 정신건강엔 나을 거란 조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 이야기가 더 와닿나요? 참고로 20년 전인 2006년에 한국에 아직 없었던 것(또는 매우 드물었던 것)을 몇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마트폰, 로봇청소기와 건조기, 모바일 뱅킹과 모바일 내비게이션, 카카오톡, 유튜브, 넷플릭스, 쿠팡, 배달의민족…. 어떤가요. 이런 게 없던 20년 전보다는 지금 삶이 좀 나아진 것 같나요? 아님, 차라리 그때가 더 나았을까요.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6월 12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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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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