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엔 영화도 '제조일자' 붙여야… 한 달만 지나도 옛날 기술 어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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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파트'의 한 장면. 건물 등 인물을 제외한 배경 요소를 생성AI 솔루션으로 구현했다. CJ ENM 제공

영화 '아파트'의 한 장면. 건물 등 인물을 제외한 배경 요소를 생성AI 솔루션으로 구현했다. CJ ENM 제공

“앞으로 극장 개봉 영화에 ‘제조일자’를 붙여야 할지도 몰라요.”

최근 영화시장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마트나 편의점 매대에 비치된 유제품도 아닌 영화 작품에 제조일자를 논하는 이유는 최근 콘텐츠 산업에 깊숙하게 침투한 인공지능(AI)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영상이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실사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해지는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분초를 다투는 AI 솔루션들의 업데이트 속도를 고려할 때, 불과 몇 달 전 제작된 영상도 최신 기준으로는 낡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콘텐츠 제작문법까지 바꾸기 시작하면서 영화에도 ‘완성도’와 별개로 ‘최신성’이라는 기준이 새로 개입하기 시작한 셈이다.

30일 서울 한강로3가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공개된 영화 ‘아파트’는 이런 영화시장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러닝타임 60분인 이 영화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유미가 새로 이사한 낡은 아파트에서 기묘한 사건을 맞닥뜨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한국형 오컬트 공포영화다. 영화적 측면에선 범작에 불과하지만, AI기술이 적용된 ‘하이브리드 영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영화 '아파트'의 한 장면. 건물 등 인물을 제외한 배경 요소를 생성AI 솔루션으로 구현했다. CJ ENM 제공

영화 '아파트'의 한 장면. 건물 등 인물을 제외한 배경 요소를 생성AI 솔루션으로 구현했다. CJ ENM 제공

생성AI가 만든 60분 장편영화

영화를 제작한 CJ ENM에 따르면 ‘아파트’는 실제 배우의 연기를 제외한 배경과 시각효과 등 모든 요소를 AI로 구현했다. 로케이션 이동 없이 스튜디오 한 곳에서 모든 장면을 촬영한 뒤 AI 작업으로 실사처럼 만든 것이다. 정창익 CJ ENM AI스튜디오팀장은 “실제 배우의 연기를 그대로 살리면서 AI가 가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검증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AI가 영화·드라마 등 콘텐츠 시장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해 전이다. 2023년까지만 해도 영화산업에서 AI에 대한 기대감은 낮았다. AI를 통해 생성된 이미지나 영상이 조악하고 어설펐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도 AI의 활용을 두고 ‘창의성 훼손’ 여부에 대한 논쟁은 뜨거웠어도 실사 촬영을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 봤다.

분위기는 1년 새 급변했다. 생성 AI 솔루션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다. 오픈AI 소라, 런웨이 젠-3알파 등이 고해상도 영상을 만들어 충격을 줬다. ‘윌 스미스 스파게티 먹방 밈(meme)’이 대표적이다. 2023년 손까지 먹어 치우던 기괴한 모습이 지난해엔 실제 배우가 스파게티를 먹는 듯한 영상으로 발전했다. 왜곡을 최소화하고 물리적 일관성까지 구현하는 단계로 넘어온 것이다.

배우 윌 스미스가 스파게티 먹는 장면을 AI로 구현한 장면. 왼쪽은 2023년, 오른쪽은 2025년. 유튜브 갈무리

배우 윌 스미스가 스파게티 먹는 장면을 AI로 구현한 장면. 왼쪽은 2023년, 오른쪽은 2025년. 유튜브 갈무리

‘아파트’에는 구글의 AI솔루션인 이마젠, 나노바나나, 비오 등이 사용됐다. 구글의 높은 거대언어모델(LLM) 경쟁력에 더해 해당 솔루션의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나다는 판단으로 전략적 협업에 나섰다. 이날 상영회에 참석한 안성민 구글 클라우드 커스터머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창작자의 의도가 AI 모델에 정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긴밀한 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물론 ‘아파트’의 모든 장면이 실사와 똑같은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아니다. 인물의 피부 질감, 움직임 등에서 어색한 점이 금세 눈에 들어온다. 이를 두고 CJ ENM은 제작 시점과 기술 발전의 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생성 AI 기술이 시기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크다”며 “영화를 촬영하고 제작한 지난해 여름 기준으로는 숙제였던 장면이 지금은 매끄럽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AI 영화는 ‘몇 년도 몇 월 만들었다’고 강조하고 싶을 정도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흘 촬영으로 끝"…AI가 바꾸는 제작문법

생성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를 활용한 비용 효율화도 영화 등 콘텐츠 업계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아파트’ 제작에 쓰인 비용은 5억원으로, 일반적인 장편 상업영화와 비교해 제작비가 크게 낮다. 촬영도 나흘 만에 마쳤다. 백현정 CJ ENM 콘텐츠이노베이션 담당은 “일반 영화를 기준으로 5~7배 비용 효율화를 예상한다”고 했다.

영화 '아이엠 포포'의 한 장면. 시네마뉴원 제공

영화 '아이엠 포포'의 한 장면. 시네마뉴원 제공

별도 로케이션 촬영, 특수효과 편집 없이 전 장면을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해 제작비와 촬영시간을 모두 줄였다는 것이다. 생성AI를 활용하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나 거대 괴수가 도심을 파괴하는 장면의 제작비 차이가 없어 재난 영화, 공포 등 장르영화에서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향후 극장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서 AI를 활용한 콘텐츠가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장면을 생성AI로 제작한 국내 첫 영화 ‘아이엠 포포’가 다음달 21일 개봉한다. 같은 날 개봉하는 ‘한복 입은 남자’ 역시 생성AI를 활용해 15세기 조선과 이탈리아를 구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는 5월 1일부터 티빙에서 공개된다.

백 담당은 “앞으로 선보일 드라마와 영화들에 AI기술이 가미돼 있을 것”이라며 “AI 버추얼 PPL 등 광고사업에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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