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13일의 밤’‘힌드의 목소리’ ‘란 12.3’ ‘남태령’
전쟁·계엄 등 실화 소재 영화 속속 개봉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사는 관객을 위한 송가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가자지구의 6세 소녀 힌드의 사망 전 실제 목소리가 담겨 있다. 현실 세계 속 TV에선 이란초등학교 폭격으로 숨진 168명을 추모하는 ‘미나브 168’ 글씨가 그려진 비행기를 타고 온 이란 협상단의 모습이 비춰진다.
탈레반 점령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긴박한 탈출기를 그린 ‘카불: 13일의 밤’, 계엄 해제를 그린 다큐 ‘란 12.3’이 속속 개봉한 가운데, 남태령 고개의 대치를 그린 ‘남태령’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실화 바탕 영화들이 영화 같은 현실 속 관객들을 생각의 바다로 이끈다.
영화가 된 탈레반 탈출기 ‘카불: 13일의 밤’
프랑스 역사상 가장 큰 구출 작전 현장을 그린 ‘카불: 13일의 밤’(수입·배급: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은 2021년 8월,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카불 한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한 500명의 필사적인 탈출극을 담아낸 실화 소재 스릴러다.
예고편은 철수 지시가 내려진 프랑스 대사관에서 지휘관 ‘비다(로쉬디 젬)’가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다급히 모든 내부 자료를 없애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압적 통제와 인권 침해 등이 우려되는 상황 속, 이미 대사관 앞은 탈레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영상은 탈레반이 쉽사리 침입하지 못하는 프랑스 대사관 내부의 모습과, 나라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탈레반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아프간 사람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국가가 무너지는 참담한 순간을 조망한다. 총성과 아우성은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실감나는 현장감을 선사한다.
미군 철수로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과, 탈출 가능의 문 앞에서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좌절하는 사람들, 온갖 훈련을 받았지만 상상 그 이상의 현실에 혼란스러워하는 군인들의 모습까지…. 영화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끝까지 서로를 붙잡고자 하는 인간성, 희망과 절망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여운을 전한다.
영화 ‘카불: 13일의 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는 혼란 속에서, 아프가니스탄 주재 프랑스 대사관을 지키는 이들은 남은 13일 동안 500명의 사람들을 공항까지 무사히 대피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도시가 무너져가는 가운데, 이들은 극심한 위험을 뚫고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기록을 넘어 ‘증언’과 ‘참여’를 말하다 ‘힌드의 목소리’
브래드 피트, 호아킨 피닉스, 루니 마라 등이 제작에 참여해 화제가 된 영화 ‘힌드의 목소리’(수입: 찬란 | 배급: (주)더컨텐츠온 | 공동제공: 퍼스트맨스튜디오, 소지섭)는 총탄 세례 속 구조를 기다리다 숨진 소녀 힌드의 목소리를 정서적 중심에 두면서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통화 반대편에서 분투했던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촬영 당시 배우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실제 인물이 당시 힌드에게 했던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했으며, 이어피스를 통해서는 원본 녹음에 담긴 힌드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연기했다. 배우들 모두가 팔레스타인 출신이었고, 다수의 엑스트라 역시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 영화는 단순한 역할 수행을 넘어 개인적·역사적·정치적으로 깊이 맞닿아 있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과 영화제 사상 최장 기립박수 기록으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고, 이어 제98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분명 대본과 연기를 통해 구성된 극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 벌어진 분명한 비극 앞에 기억과 슬픔, 실패의 감각이 영화적으로 강렬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내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된 채로, 참여의 방법을 찾아 각성하게 된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에 대피 명령이 떨어진 날 6살 소녀로부터 1통의 신고가 접수된다. “나한테 총을 쏘고 있어요, 제발 데리러 와 주세요.” 적신월사(이슬람권 인도적 구호단체)는 구조대와 단 8분 거리에 있는 ‘힌드’를 구하기 위해 조정 절차를 이어가지만 구조 작전은 무려 5시간 동안 이어진다.
가장 긴 밤을 건너, 가장 먼저 아침을 마주한 곳 ‘남태령’
예고편은 세상이 부글대며 끓고 있었던 겨울, 한 줄의 트윗이 퍼지던 X(구 트위터) 타임라인으로 포문을 연다. “깨어 있는 시민인지 잘 수가 없는 시민인지”. 영화는 2025년 3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트랙터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법원에 의해 서울 진입이 막히면서 남태령고개 일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집회·대치 상황을 담아냈다.
‘어른 김장하’ 김현지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영화 ‘남태령’(제작: MBC경남 | 배급: ㈜시네마 달)은 28시간 동안 이어진 남태령 시위를 기록한 최초의 영화다. 영화는 난방 버스로, 따뜻한 물과 음식으로, 핫팩 배달로, SNS로, 농민과 지역민, 그리고 처음 만난 시민들이 서로를 동지라 부르며 타임라인이 광장이 된 남태령의 밤의 온도를 고스란히 전해준, 눈부신 연대의 기록을 담고 있다.
‘현장’과 ‘X’라는 이중의 광장을 넘나들며 만들어간 새로운 연대의 기록, 이 디지털 네이티브 리얼리티 아카이브는 광장에서 시작된 시민 연대를 따라가며, 새로운 세대가 이끈 민주주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담아 그날의 감동을 소환한다. 평범한 여성 청년 농민에서 ‘인간 남태령’ 그 자체로 거듭난 ‘향연’(김후주), 락페에서 광장까지 동료 시민으로 만난 ‘내향인 깃발’ 기수, 콘크리트 파괴자 ‘TK의 딸들’, 시민정론지 ‘에스텔 뉴스계정’ 운영자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광화문과 여의도 광장을 넘어 남태령으로 이어진, 셀 수 없는 깃발로 이뤄진 포스터 이미지는 남태령의 연대가 어느 한 사람의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무수한 손길들이 쌓여 만들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남태령’
‘좋아요’ ‘리트윗’ ‘북마크’로 열린 광장에서, 가로막히고 얼어붙은 고갯길에서, 동짓밤을 함께 하며 이들은 서로의 동지가 되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긴긴밤’은, 그렇게 가장 ‘밝은 밤’이 됐다.
내란을 진압한 시민에게 보내는 이명세 감독의 러브레터 ‘란 12.3’
‘그날 민주주의가 멈췄다’. 개봉 첫 주 13만을 기록하며, 지난 4일(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누적 관객수 20만 명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란 12.3’은 이로써 ‘왕과 사는 남자’, ‘살목지’에 이어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세 번째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특히 다큐멘터리 장르임에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톱8에 진입한 영화 ’란 12.3’은 우리가 지켜낸 2024년 12월 3일 계엄 해제의 기록을 담은 이명세 감독의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시민들이 제공한 영상·사진, 의원실 및 보좌진 기록, 기자 취재, 유튜버 자료 등을 엮어 그날의 현장을 재구성했다.
다큐의 공식인 내레이션과 인터뷰를 없앤 채 강렬한 사운드와 현장 기록 같은 필름, 애니메이션, AI 영상의 결합을 통해 미장센의 대가다운 감독의 솜씨가 드러나고, 이것이 조성우 감독의 음악과 만나 폭발한다.
영화 ‘란 12.3’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평화로웠던 일상이 깨졌다. 다시 반복된 군부독재의 그날처럼, 무장한 군 병력은 헌법 기관을 무력화하려 한다. 계엄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과 의원들은 국회로 몰려간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 속, 이들의 숨막히는 싸움이 벌어진다.
[글 박찬은 기자(park.chaneun@mk.co.kr)]
[사진 각 영화 스틸컷]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29호(26.05.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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