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 〈89〉기부 시장의 '매슈 이펙트'와 컴포저블 거버넌스의 시대

3 hours ago 2
김병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사무총장·경영학 박사김병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사무총장·경영학 박사

나눔은 정부와 시장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묵묵한 연대의 실천이다. 국세청의 '2025년 공시 공익법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공익법인들의 총 기부금 수익은 10조9126억원에 달한다. 이 거대한 자금은 우리 사회의 무수한 모퉁이에서 사회적 가치로 치환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를 직시하면 그리 온화하지만은 않다. 기부 시장 내부를 관통하는 고착화된 '매슈 이펙트(Matthew Effect·마태효과)'라는 차가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부금 수령액이 1000억원을 초과하는 상위 고액 법인은 단 15개, 전체의 0.07%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가져가는 기부금은 전체의 38.44%로, 무려 4조원이 넘는 자본이 이들에게 집중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8477억원), 월드비전(2834억원), 국경없는의사회 한국(637억원) 등 인지도가 높은 대형 공익법인들이 이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반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규모 단체들의 처지는 열악하다. 기부금이 전무한 법인(8072개, 37.9%)과 연간 3억원 이하인 소액 법인(1만934개, 51.3%)을 합치면 무려 전체의 89.2%에 육박한다. 공익법인 10곳 중 9곳은 연간 3억원도 안 되는 재원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 89%의 법인이 수령하는 기부금 총액 비중은 다 합쳐봐야 고작 6.1%다. 자본이 고르게 순환되지 못하고 거대 기관의 둑 안에만 고여 있는 '자본의 가두리 현상'이 극명하다.

대형 기관들의 브랜드 파워와 체계적인 시스템의 효율성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본의 편중이 가져올 '다양성의 상실'이다. 거대 NGO의 거시적인 시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골목길의 세밀한 그늘, 혹은 아주 작고 혁신적인 공익적 실험들은 바로 이 소규모 법인들의 손끝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의의 낙수효과만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소규모 단체들이 스스로 생존하고 기부자와 투명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드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그 해법의 핵심이 바로 행정의 디지털 전환인 'AX(AI Transformation)'와 이를 뒷받침할 '기부빌더(Donation Builder)'의 도입이다.

현재 소규모 법인들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것은 무거운 행정적 족쇄다. 출연재산 보고서 제출, 결산서류 공시 등 매년 요구되는 납세협력의무는 소규모 단체의 취약한 인력 구조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서류의 성벽이다. 이 장벽을 깨기 위해서는 무거운 조직의 덩치를 복제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기술만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는 '컴포저블 거버넌스(Composable Governance)'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AI와 자동화 기술을 결합한 행정 AX가 도입된다면 소규모 단체들의 생태계는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복잡한 회계 처리와 공시 서류 작성을 AI가 자동화하고, 기부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리포팅해 주는 스마트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단 1~2명의 활동가만으로도 대형 NGO 못지않은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소상공인들이 쇼핑몰 빌더를 통해 독립몰을 열듯, 소규모 단체들도 직관적인 후원 관리 소프트웨어인 '기부빌더'를 장착해야 한다.

최근 풀뿌리 단체들의 자립을 위해 전개되고 있는 '모두의기부 챌린지'는 이러한 상생 테크를 이식하기에 가장 완벽한 마중물이다. 이들에게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 소규모 공익법인들이 디지털 무기를 장착하고 행정의 족쇄에서 벗어날 때, 대한민국 기부 생태계는 비로소 건강한 '플랫폼 롱테일(Long-tail)'의 조화를 이룰 것이다. 거대한 NGO의 웅장한 연주 사이에, 골목길 소규모 단체들의 다정한 독주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공존의 시대를 소망한다.

김병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사무총장·경영학 박사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