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남북 관계가 경색돼 있던 시점 북한 측 인사와의 접촉 신고 수리를 거부한 통일부의 조치는 정당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통일 운동 연대 조직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현 자주통일평화연대) 소속 청년학생본부 집행위원장 A씨가 통일부를 상대로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수리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 대해 지난 2월 18일 청구 기각 판정을 내렸다.
A씨의 북한 주민 접촉 신고는 2023년 8월 21일께 이뤄졌다.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9조의2에 따라 우리 국민이 북한 주민과 접촉하려면 통일부에 미리 신고해야 한다. 접촉 대상은 6·15일본지역위원회 청학협의회 소속 2명이었다. A씨는 이들과 같은 해 8월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서신을 교환하겠다고 신고했다.
통일부는 A씨가 접촉할 대상 2명의 성명과 소속 등을 보완하라고 요구했고, A씨는 같은 달 25일 해당 내용을 추가해 재신고했다.
그러나 9월 6일 통일부는 A씨의 신고 수리를 최종 거부했다. 사유로는 “현 남북 관계 상황, 남북교류협력법 9조의2 3항 및 같은 법 시행령 16조 6항에 따른 관계부처 협의 등 고려”가 적시됐다. 남북교류협력법 9조의2 3항은 북한 주민과의 접촉이 ‘남북 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을 때’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통일부가 수리 거부 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신청을 불허한다는 결과만을 통보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행정 처분을 내릴 땐 당사자에게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행정절차법 23조를 위반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원은 통일부가 A씨 측에 불허 사유를 알린 것으로 판단했다. A씨가 소송 제기 단계에서 남북교류협력법 9조의2 3항에서 규정한 사유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에 근거해서다. 재판부는 A씨가 “처분 당시 그 근거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행정절차법 위반 소지가 없다고 봤다.
남북교류협력법에서 규정한 불허 사유 자체도 성립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통일부의 처분이 이뤄진 때는 2022년 10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된 시점이었다는 점에서다. 당시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신형 우주발사체(군사정찰위성) 등을 발사하며 적대 정책을 강화하던 중이었다. 재판부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의 위험이 점증했고, 국제적으로도 위협 요인이 돼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불러 일으켰다”고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A씨가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 단체와 접촉하는 것은 “남북교류·협력을 해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A씨가 과거 북한 주민 접촉 과정에서 통일부가 정한 요건을 위반해 1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던 점도 거론됐다. 재판부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 등으로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수리를 거부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은 국가 안보, 질서 유지, 공공복리 등으로 광범위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회복하기 매우 어려운 비가역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통일부의 처분에 따른 공익이 A씨가 침해받은 사익보다 크다고 봤다.
앞선 대법원 판결 등에서 조총련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 단체”로 규정된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재판부는 A씨가 속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소속 청년학생본부의 전 집행위원장이 2020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은 점에 근거해 “관계기관 협의 단계에서 법무부가 수리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회신, 사실상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는 점도 지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