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이 대법원의 리걸테크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수주 규모는 크지 않지만, 미래 공공·금융 분야에서 인공지능(AI) 기술력을 입증할 발판으로 삼을 수 있어서다. 향후 확대될 공공 AI 사업 수주를 위한 전초전 성격도 있다.
◇“금액보다 레퍼런스가 중요”
1일 법조계와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재판 지원 AI 플랫폼 구축 및 모델 개발’ 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삼성SDS, LG CNS, KT 등 국내 주요 IT 대기업 담당자가 대거 참석해 사업 참여 가능성을 타진했다.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이 실질적으로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설명회에 참석한 주요 대기업 모두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예산이 145억원 수준으로 단일 규모로는 크지 않지만, ‘대법원 발주 사업’이라는 상징성과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주요 기업이 주목하고 있다는 평가다. IT업계 관계자는 “이 사업은 금액 자체보다 대법원이라는 공공기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실적을 확보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공공, 금융 등 다른 B2G(기업·정부 간 거래) 사업 수주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수주전은 5월 말 이후로 예상된다. 지금은 공개된 사전규격을 기반으로 입찰 희망 기업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입찰 공고는 이달 말 나올 예정이다.
◇공공 AI 영역 수주 경쟁 심화
삼성SDS, LG CNS, KT는 최근 공공 AI 영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민간 분야 대형 AI 관련 사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가 확보된 공공사업이 AI 사업 역량을 입증할 주요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범정부 초거대 AI 공통기반 구축 사업’ 수주전에서도 이들 3개 기업이 나란히 경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업은 오는 9일 개찰이 예정돼 있다.
이 중 LG CNS는 사법부 관련 사업을 다수 진행 중이다. 이 회사는 총예산 2000억원 규모의 대법원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을 수주해 구축·관리 중이며,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구축 사업도 맡았다. 삼성SDS 역시 대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데이터센터에서 총 3개 컨테이너를 확보하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이번 사업을 통해 재판 절차 효율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장정환 사법정보화총괄심의관은 “판사들이 기록에 파묻히는 시간을 줄이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재판 지원 AI 플랫폼은 2025년부터 2028년까지 4년간 단계적으로 개발된다. 올해는 법률 자료 검색 효율화 기능이 구축되고 이후 재판 자료 쟁점 분석, 텍스트 변환, 재판서 작성 지원, 개인정보 비식별화 자동화 기술 등이 순차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