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에 대해서 미국 세관에서도 확답을 못 줍니다. 관세사들이 질문을 하는데 답변을 못 합니다.”
미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 자동차 부품 회사 관계자는 한국경제신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늘도 관세사에게 메일을 보냈다”면서 “자동차 부품 관세가 아직 도입은 안 됐는데, 그러면 기본관세(10%)를 내야 하는지 여부를 물어봤지만 모르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탓에 기업들의 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새로운 관세조치를 계속 발표하면서도 기존 관세와의 우선순위 여부, 중복적용 여부, 적용 시기, 적용 대상 등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먼저 관세 대상을 포괄적으로 잡은 후에 기업들의 반발이 큰 항목만 조금씩 후퇴하는 패턴도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은 적극적인 대응은 고사하고 현재 내야 하는 관세가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중복 적용 기준 이제야 나와
29일(현지시간)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들의 고충은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어떤 관세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품목별 관세, 기본관세, 상호관세, 펜타닐 및 불법이민 관세 등이 잇달아 추가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여러 그룹에 동시에 해당되는 제품에 대해 분명한 지침이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철강이나 알루미늄을 이용한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이다. 철강관세를 적용해야 할지, 자동차 부품관세를 적용할지, 둘 다 적용할지 여부가 명확치 않다 보니 중복 납부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단 해당되는 관세에 대해서는 전부 중복 납부하고 있다”면서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보다는 사후적으로 환급을 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발표한 행정명령은 이런 현장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관세와 캐나다·멕시코 관세,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서로 중복해서 부과되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어느 쪽이든 더 높은 관세를 내는 것이고 중복되지 않는다”고 사전 브리핑에서 설명했다.
조성대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인 경우 기본관세(10%)는 내지 않아도 된다”면서 “적극 행정을 하기 어려운 미국 세관 공무원들이 ‘해당되면 다 내라’는 식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금 압박에 원가노출 부담
관세로 인한 갑작스러운 현금수요 증가도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관세는 수입할 때 현금으로 내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작년 말에 예상했던 자금 수요를 벗어나는 현금 수요가 발생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소규모 기업들은 수요 감소로 인한 자금흐름 악화와 함께 관세로 인한 부담까지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관세 적용에 따라 출고가격을 올려야 할 경우 원가 내역을 노출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트럼프 정부는 철강·알루미늄·구리·목재와 같은 원자재에 대해 관세를 부과(구리와 목재는 부과 예고)하고 있다. 함유량에 따라 관세율은 비례적으로 적용된다. 예컨대 철강이 50% 들어간 파생상품에는 철강관세가 50%만큼 부과되는 식이다. 이런 관세를 내기 위해서는 각 제품의 원재료 함유량을 공개해야 한다. 미국 정부에 이를 증빙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데 따르는 행정비용도 들지만, 이를 최종가격에 전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원재료 내역과 원가 내역을 알려줘야 한다. 이는 가격 협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가격반영 협상조차 어려워
관세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공급처를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다. 맞춤형으로 납품을 하는 제품의 경우 원·부자재와 주요 부품에 대한 내역을 발주처에서 정해주기 때문에 관세를 이유로 유연하게 교체하기 어렵다.
가장 큰 고충은 관세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그 자체다. 기업들이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물건 가격에 관세를 어떻게 반영할지를 두고 거래처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관세 정책 자체가 계속 바뀌다 보니 협상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섣불리 현재 조건으로 협상을 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수 있어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행정명령에는 미국에서 자동차를 완성해 판매하는 업체에 향후 관세를 상쇄할 수 있는 크레딧을 2년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첫해엔 완성차 가격의 15%, 둘째 해엔 10% 크레딧을 적용한다. 이는 자동차 부품 관세율을 25%에서 21.25%(첫해), 22.5%(둘째 해)로 각각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트럼프 정부는 강조했다.
포드와 GM 등은 이 조치를 환영했지만 부품업체 관계자들은 이 조치가 '상징적인 수준'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플라비오 볼페 캐나다 자동차부품제조업협회 회장은 글로브앤드메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자동차업계의 요청에 대응하는 것 같다"면서 "부분적인 조치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적절한 수준은 '제로(0)' 관세"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