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대법원 “트럼프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은 위헌” 판결

10 hours ago 7

(출처=미국 NBC 방송 유튜브)

(출처=미국 NBC 방송 유튜브)
“우리는 오늘도 그 약속을 지킨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을 위헌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의 판결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약속’은 남북전쟁 직후인 1868년 채택된 수정헌법 14조로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 신분과 관계없이 시민권을 보장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대법원은 1898년에도 시민권자가 아닌 중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웡 킴 아크’는 미국인이라는 판례를 남겼다.

다만 이번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 전반에 제동을 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최근 각각 지진과 내전을 피해 미국에 왔던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 중동 시리아 출신 이민자의 ‘임시보호지위(TPS)’를 종료했다. 미국 국경지대에 도착한 망명 신청자 역시 미 영토에 들어오기 전 망명 심사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출생시민권처럼 오래전부터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인정하되, 연방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 권한은 사실상 폭넓게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란 평가가 나온다.

● “美서 태어나면 시민” 헌법 재확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재집권 당일 부모가 미 시민권자나 합법 영주권자가 아니라면 미국 땅에서 그들의 아이가 태어나도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불법 입국자의 자녀뿐 아니라 학생·취업·관광비자 등 합법적이지만 일시적인 미국 체류 자격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역시 시민권 부여 대상에서 제외하려 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 행정명령이 시행되면 매년 최대 25만 명의 신생아가 영향을 받고, 수백만 가정이 자녀의 시민권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거란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수정헌법 14조의 취지는 남북전쟁 직후 흑인 노예와 그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지 미국에서 원정 출산을 하는 각국 부유층과 불법 체류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그는 올 4월에는 대법원에서 열린 출생시민권 제한 관련 변론에 직접 참석해 재판 과정을 지켜볼 정도로 이 제도 폐지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9명의 대법관 중 로버츠 대법원장,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엘리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등 6명은 194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해 출생시민권에 대한 기존 해석을 유지해야 한다며 행정명령을 무효화했다. 특히 로버츠 대법원장, 캐버노 대법관, 배럿 대법관은 보수 성향인데도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미국에 영구적인 거주 기반이 없는 부모의 자녀는 시민권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측 주장을 “과도하게 수정주의적인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수정헌법 14조가 시민권을 영구 거주자의 자녀에게만 제한하려 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이번 판결이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4일)을 나흘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단 분석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시민의 의미를 다시 확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내 여론도 출생시민권 유지에 우호적이다. 올 4월 15~20일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회사 입소스 조사에서 응답자의 64%는 “출생시민권 폐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32%)의 2배였다.

● 트럼프, 반이민 정책 고수할 듯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 결집에 활용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의회는 오늘부터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우리나라에 불공정한 출생시민권 제도를 끝내기 위한 입법에 착수해야 한다. 이를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설계자’로 꼽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대법원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터무니없는 결정 가운데 하나”라며 비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이날 판결 직후 연방검찰에 원정출산 조직에 대한 수사를 우선 추진하라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출생시민권 제한은 무산됐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원정출산 단속 강화 등을 통해 반이민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불법체류자 신속 추방 확대, 이들의 장기 구금 의무화 정책 등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법적 소송 또한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등도 이민·국적법을 개정해 시민권을 대폭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앞으로도 출생시민권과 반이민 정책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대규모 강경 단속 방식 대신, 제도와 행정 절차를 활용한 조용한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며 “반이민 정책을 더 정교하고 더 체계적으로 밀어붙일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김윤진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