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평화협상이 핵무기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결렬됐다. 협상을 이끈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밴스 부통령은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1시간 동안 협상을 이어오며 의미 있는 논의를 했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협상 결렬 원인으로 밴스 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지목했다. 그는 “이란에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약속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을 포기하겠다는 확약 보장’을 요구했지만, 이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란 대표단도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귀국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2~3개 주요 이슈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가 불발됐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 매체들은 핵물질 반출 요구와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문제 등에서 양국의 입장 차가 컸다고 전했다.
두 나라의 협상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밴스 부통령은 “우리는 선의로 협상에 임했고, 하나의 명확한 틀을 제시했다”며 “이란이 이를 수용할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21시간 협상에도 '노 딜'…에너지 시장 불확실성 확대
美 "핵 개발 종료가 최종 제안"…이란 "우라늄 농축 포기 못해"
미국과 이란이 지난 11~12일 이틀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벌인 마라톤협상에서 종전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제에 따른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길어지게 됐다. 다만 두 나라의 협상이 완전히 좌초된 것은 아니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해 브렌트유 선물(5월 인도분) 등 국제 유가는 12일 약보합세를 나타냈다.
◇“최종 제안” 제시한 美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이번 협상에 대해 “(미국이) 이란에 핵 프로그램의 영구적 종료를 요구하는 ‘받거나 말거나’ 식 제안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란에 제안한 내용에 대해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최종이자 최선의 제안”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다. 핵 프로그램 종료 요구가 사실상 최후통첩임을 분명히 해 이란 압박 강도를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핵심 쟁점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포기 여부, 고농축 우라늄 보유 문제, 자국 내 우라늄 농축 능력 유지 여부다. 이란은 핵 활동 일시 중단은 가능하지만 무기급에 근접한 우라늄 비축 포기와 자국 내 우라늄 농축 능력의 영구 포기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란은 이를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21시간에 걸친 마라톤회담이 끝난 직후에는 ‘협상이 하루 더 연장됐다’는 보도가 이란 매체를 중심으로 나왔다. 미국의 요구에 이란이 나름의 제안을 던졌고, 추가 협상을 통해 논의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밴스 부통령은 이란보다 일찍 귀국 입장을 못 박았다. 합의안 도출을 위한 기 싸움 과정에서 이란 측에 심리적 충격을 주기 위한 계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길어지는 호르무즈 봉쇄
이번 협상의 다른 핵심 쟁점은 호르무즈해협이다. 이란 측은 해협 개방의 전제 조건으로 ‘폭격 피해에 대한 전쟁 배상금 지불’과 ‘경제 제재의 전면 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제재 해제 역시 이란의 핵 폐기 이행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 와중에 미국은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군함을 호르무즈해협에 진입시키며 이란을 압박했다. 구축함 2척을 투입해 지뢰 제거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이란혁명수비대는 “해협 통과 시 강력 대응하겠다”고 반발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지속되며 세계 경제의 피해도 커질 전망이다. 11일 미국 미시간대는 4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집계 이후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이 4.8%로 뛰는 등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소비자가 예상한 데 따른 것이다.
◇휴전 기간 길어지나
협상 결렬에도 양측의 물밑 소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외교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며 “파키스탄 및 역내 우방 간 연락이 계속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대치 국면은 장기화될 수 있다. 양측이 사태 장기화에 따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협상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밴스 부통령은 “공은 이란으로 넘어갔다”고 했고, 이란 측도 “차기 협상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 나라가 휴전을 연장하며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최종안에 이란이 수정 제안을 내놓거나 파키스탄 등이 절충안을 제시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서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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