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안 ‘4천억불’ 지우고 ‘5천억불’ 적어
미국이 투자처 결정·이익도 90% 회수 조건
베선트 장관 “관세 낮춘 건 ‘혁신적 투자’ 덕분”
트럼프 “시장 개방 동의 안하면 더 높은 관세”
미국이 일본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자동차 관세를 12.5%로 하향하기로 한 미·일 관세협상이 지난 22일(현지시간) 타결된 데에는 일본이 약속한 5500억달러(약 75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금액(690억달러)의 8배에 육박하는 규모인 이 펀드는 미국이 투자처를 결정하고, 투자 이익의 90%를 회수하게 돼 사실상 미국에 대한 일본의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23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한 15% 상호관세와 15% 자동차 관세는 다른 종류의 합의라는 점을 주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일본은 매우 혁신적인 해법을 제안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일본이 미국 내 주요 프로젝트에 자본, 신용보증, 자금을 제공하는 일본-미국 파트너십이라는 구상을 제안했다. 일본은 이 혁신적인 금융 장치를 제공할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15%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선트 장관은 5500억달러는 신규 투자라면서 미국의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의약품 등 전략 산업에 투자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럽연합(EU)이나 다른 국가가 15%보다 낮은 관세율을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는 “15%는 일본이 제안한 매우 혁신적인 패키지의 결과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더 많이 하라고 압박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일본은 미국에 (투자 대상) 프로젝트를 선정할 능력을 줄 것”이라며 “대통령이 ‘미국에서 항생제를 만들자’고 말하면 일본이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고,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운영할 사업자에게 줄 것이며, 이익의 90%는 미국의 납세자가 갖고 10%는 일본이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은 5500억달러는 자본, 대출과 보증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하면서 일본은 자금만 대고 사업을 직접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도요타 같은 일본 회사가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짓는 것과 투자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이 철폐를 요구한 무역장벽을 일본이 없애려 하지 않아 자신이 이같은 대미투자 구상을 지난 1월 일본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이것을 시작한 이유는 일본은 절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일본 시장을 진짜로 개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며 “그래서 난 일본에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무엇이든 지을 수 있는 금융을 제공하는 4000억달러 펀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이 일본에 제안한 펀드 규모는 4000억달러였지만, 이 금액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 단계에서 5500억달러로 상향된 것으로 추측된다.
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지난 22일 소셜미디어(SNS) 엑스(X)에 올린 사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대화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책상에는 ‘일본, 미국에 투자’(Japan Invest America)라는 제목의 문서가 있다.
이 문서에는 ‘4000억달러’라는 숫자를 지우고 손으로 ‘5000억달러’라고 적은 것이 보인다. 이를 미뤄볼 때 일본은 당초 40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를 제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이를 5000억달러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속 문서에는 또 이익 공유비율이 90%가 아닌 50%로 인쇄돼있는데. 이 숫자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협상과정에서 수정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서에는 또 ‘10% 관세, 그리고 자동차·의약품·반도체에 15%’라고 적혀 있는데, 이 부분에도 의약품·반도체 위에 20%로 보이는 숫자가 손글씨로 적혀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 소유의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시장 개방에 동의하는 나라에만 관세를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훨씬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글에서 “나는 주요 국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시장을 미국에 개방하게 만들 수 있다면 항상 관세 수치를 양보할 것”이라고 밝힌 뒤 “그것(시장개방)은 관세의 또 다른 위대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한국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의 ‘관세 서한’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발송한 바 있다. 한미간의 별도 무역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달 1일부터 상호관세 적용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