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캐롤(36·잉글랜드)에겐 악몽 같은 데뷔전이었다.
캐롤은 7월 16일 잉글랜드 6부 리그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FC 데뷔전을 치렀다. 상대는 잉글랜드 리그2(4부) 소속 크롤리 타운이었다.
공식전은 아니었다. 2025-26시즌을 앞두고 치러진 친선경기였다.
이 경기가 큰 관심을 받았다. 캐롤이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에 입단하고 첫 경기에 나선 까닭이다.
캐롤은 한때 세계의 주목을 받은 스트라이커였다. 캐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선 영국 선수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캐롤은 뉴캐슬 유나이티드 시절 194cm 키에 강한 힘, 탁월한 위치 선정 등을 보이며 EPL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다.
리버풀이 2011년 겨울 캐롤을 품었다. 리버풀은 당시 캐롤 영입을 위해 뉴캐슬에 이적료 3,500만 파운드(당시 한화 약 630억 원)를 썼다. 이는 영국 선수 역대 최고 이적료이자 리버풀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이었다. 캐롤은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캐롤의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캐롤은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추락을 거듭했다.
캐롤은 2011-12시즌 EPL 35경기에서 4골 2도움에 그쳤다. 캐롤은 리그 후반기엔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캐롤은 리버풀을 떠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뉴캐슬,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레딩 FC, 아미앵 SC, 지롱댕 드 보르도 등을 거쳤다.
부활은 없었다.
캐롤은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에서도 단일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캐롤이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한 건 2010-11시즌이 유일하다. 캐롤은 이 시즌 전반기 뉴캐슬에서 11골(19경기)을 터뜨렸다. 그리고선 후반기에 리버풀로 둥지를 옮겼다.
캐롤은 새 시즌을 앞두고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를 택했다.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팬들은 환호했다. 한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이가 6부 리그 소속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까닭이다.
캐롤의 데뷔전은 쉽지 않았다. 캐롤은 크롤리 타운에 1-2로 뒤진 후반 15분 교체 투입됐다.
영국 ‘더 선’에 따르면 캐롤이 공을 잡는 순간마다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캐롤이 공을 잡는 것만으로 팬들은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더 선’은 “수백 명의 팬이 캐롤을 보고자 경기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캐롤은 이렇다 할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경기 막판 등 번호에 ‘Trialist B(테스트 선수 B)’라고 쓰여 있는 선수에게 2골을 헌납하며 1-5로 완패했다.
‘더 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캐롤과 거리가 멀었다”며 “캐롤은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고 혹평했다.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팬들에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슈퍼스타 출신 캐롤이 자기 팀 유니폼을 입고 뛰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다.
‘더 선’과의 인터뷰에 응한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팬은 “나는 1990년대부터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를 응원 중”이라며 “처음 캐롤의 영입 소식을 접했을 땐 농담인 줄 알았다”고 웃었다. 이어 “우리 팀은 돈보다 마음으로 움직인다. 캐롤은 그 마음을 이해하는 선수”라고 했다.
또 다른 팬 제이크는 “25년째 구단을 응원 중”이라며 “캐롤이 많은 골을 넣어준다면, 우리 지역 영웅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캐롤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6부 리그, 조용한 동네 구장, 낯선 상대, 무명 선수들과의 경기다. 화려함은 없지만, 캐롤이 이 팀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축구와 가족을 위해서다.
캐롤은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훈련장과 집이 가깝다.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늘었다. 이젠 가족과 함께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싶다. 나는 올여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많은 제안을 받았다. 큰 연봉을 제안한 팀도 있었다. 내 생각은 확고했다. 현재 내겐 돈보다 축구다.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는 내게 도전이고 기회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