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제곱으로 좁아지는 나의 세계[윤덕원의 가사의 재발견]

5 days ago 12

윤덕원 가수·‘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 저자 A4 용지를 반으로 몇 번이나 접을 수 있을까? 생각 같아서는 몇 번이라도 접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반적으로는 7번 안팎에서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2002년 미국의 고등학생이 특수 제작된 롤 용지로 12번 접는 기록을 세웠다는데, 접히는 부분에 필요한 종이의 길이를 미리 계산했다고 한다. A4 용지를 42번 접으면 달에 닿는다고 하는 깜짝 지식도 있다. 얇은 종이지만 거듭제곱으로 두께를 더하다 보면 높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휴지를 사용한 다음 한 번 더 접어서 무엇인가를 닦곤 하는 습관이 있다. 식당에 놓인 종이 냅킨으로 입을 닦고 나서 더 접히지 않을 때까지 접어가며 식탁 위를 훔치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이렇게 꼼꼼히 물건의 소용을 온전히 다하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지만, 가끔은 나 자신도 종이처럼 접히고 접혀가며 소모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무작정 멈출 수도 없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많이 접으면 이론적으로는 달나라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담아 ‘한 번 사용한 나를 다시 반 접어 쓰는 날, 거듭제곱으로 좁아지는 나의 세계. 종이를 마흔두 번 접으면 달에 닿는대, 이왕 좁아진 거 달에나 갈까’ 하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노래가 ‘친환경 달 여행’(6월 발표)이다. 나름대로 현실을 해학적으로 해석해서 조금은 웃어넘길 수도 있게 만들어 보았다. 딛고 선 곳은 좁아도 꿈은 높게 가질 수도 있는 것처럼. 가끔은 그런 위로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노래를 현실로 가져오니 온통 쓰라림뿐이다. 한 겹의 높이를 더하기 위해서 바닥의 면적을 반으로 접어야 하니 말이다. 신문지 위에 여럿이 올라서서 단계마다 반씩 잘라내는 레크리에이션 게임을 해 봤다면 그 줄어드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체감했을 것이다. 제곱을 하고 복리를 붙이면 마흔두 번으로 달에 닿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는 이야기의 반대편에는 두어 번 반으로 줄어든 것만으로도 심하게 볼품없고 좁아지는 우리의 설 터전이 있는 것이다. 현실에는 접고 접어 달에 가는 일 같은 것은 없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수록 머무는 곳은 높아져 달동네에 가까워질 뿐이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언덕이 길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것만으로 딛고 선 곳은 몇 번이나 접힌 상태다. 간신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품을 수 있는 짐도 꿈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고도가 높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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