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동 재개관 첫 전시
한진수 개인전 ‘뜸’
과정·생성의 미학 집중
공중을 부유하다 떨어진 검은 거품이 바닥에 미세한 흔적을 남긴다. 점처럼 보이던 자국들은 시간이 흐르며 층층이 쌓여 하나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새 둥지를 튼 아트센터 나비의 재개관전은 이처럼 결과보다 과정, 완성보다 생성의 시간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아트센터 나비는 재개관과 함께 키네틱 설치 작가 한진수 개인전 ‘뜸: A Pregnant Pause’를 연다. 이번 전시는 밥이 뜸을 들이며 속까지 익어가듯,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머무는 시간과 과정의 미학에 주목한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키네틱 설치작과 회화 등 10여 점이 공개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가가 제작한 기계 장치들이 사물들을 스스로의 속도로 움직이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대표작 ‘그림형성기’ 연작은 작가가 설계한 기계가 캔버스 위에서 같은 붓질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화면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작가는 물감을 뿌리는 정도만 개입할 뿐, 기계의 움직임과 중력, 물감의 흐름이 작품을 완성한다. 관람객은 결과물이 아닌 생성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된 회화 작품도 걸렸다.
연못을 연상시키는 설치작 ‘화이트 폰드’도 눈길을 끈다. 얇게 고인 흰 수면 위에서 모터로 움직이는 장치들이 깃털과 먹을 이용해 흔적을 만들고 지운다. 생성과 소멸이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며 화면은 하나의 결과로 고정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폭 4m 규모로 확장 제작됐다.
2층 전시장에 설치된 ‘불확실의 꽃’은 먹이 섞인 거품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흔적을 남기는 작품이다. 전시 기간 검은 자국이 계속 누적돼 형상이 변화한다. 개막일에 본 작품과 전시 마지막 날의 작품이 서로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시선을 유보하도록 유도한다.
아트센터 나비의 새 공간은 약 120평 규모의 4층 단독 건물이다. 1층과 2층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며, 3층은 미디어아트 연구와 세미나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지난 11일 재개관 행사에 참석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이곳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예술과 기술, 자연과 인간의 접점에서 새로운 모색을 이어가려 한다”며 “앞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을 적극 지원하고 개인전을 깊이 있게 선보이는 방식으로 전시장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2000년 개관한 아트센터 나비는 국내 최초의 미디어아트 전문기관이다.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운영되다 사간동으로 이전해 재개관했다. 한진수 개인전은 8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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