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강압수사로 악명
건강악화로 서울 요양병원 입소중 사망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 향년 88세. 경기일보에 따르면 그는 최근 건강이 악화돼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으며, 이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전기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잇따르며 ‘고문 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남민전 사건,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 등 다수 공안 사건에 연루됐고,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됐다. 당시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1981년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가 진행되면서 그는 1988년 수배됐고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고문 및 불법 구금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이후 이근안은 목사가 돼 종교 활동을 하며 공개 간증 등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책임 있는 참회를 요구해왔다.
그는 생전 자서전에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해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또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묘사된 고문 행위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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