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건희]두 번째 침수는 재난이 아니라 방치다

1 week ago 26

조건희 사회부 차장 한밤중 손발에 차가운 물기가 닿아 잠에서 깬다. 흙탕물이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와 방에 차오르고 있다. 신고가 폭주해 119는 불통이다. 폭우로 침수를 겪은 이들이 말하는 그날의 풍경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돌변한다. 그 기억은 나라가 산정한 피해액 몇 푼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2008년 7월, 어머니도 같은 일을 겪었다. 군 복무 중에 집이 잠겼다는 이모의 연락을 받고 특별휴가를 얻어 달려갔다. 반지하 방 벽에는 무릎 높이로 물이 들어왔다 빠진 자국이 선명했다. 방 한쪽에는 젖어서 못 쓰게 된 세간이 쌓여 있었다. 한밤중에 친구들을 급히 불러 물을 퍼냈다는 어머니는 그 옆에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세 번의 암을 이겨낼 정도로 강인한 어머니가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다. 18년이 지났지만, 이 좌절을 한 번도 아니라 두 번, 세 번 겪은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취재팀이 서울시 침수흔적도 4년 치를 지번 단위로 대조한 결과, 2022년 집중호우 때 물에 잠겼다가 이후 또 침수된 건물은 179곳이나 됐다. 81곳이 영등포구 문래동에 몰렸고 은평구(31곳)와 도봉구(19곳)가 뒤를 이었다. 반면 2022년 490곳이 침수됐던 강남구에서 다시 잠긴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전남광주에서는 지난해 7월 물에 잠긴 244곳이 채 복구도 되기 전인 8월에 또 잠겼다. 원인은 다 달랐다. 문래동은 인근 도림천 폭과 깊이가 부족해 비만 오면 넘쳤다. 은평구와 도봉구는 산에서 내려온 물이 좁은 주택가로 모였다. 광주 북구 신안동에서는 하천변 홍수 방어벽이 오히려 물을 가뒀다고 지목됐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첫 번째 침수 이후 어느 기관도 ‘같은 건물이 몇 번 잠겼는지’를 세지 않았다. 이번 반복 침수 통계도 취재팀이 4년 치 기록을 일일이 맞춰본 뒤에야 확인됐다. 그사이 반복 침수 지역 대책은 겉돌았다. 4년 새 무려 세 번이나 잠긴 서울 노원구의 한 다세대주택 앞에는 지난달 물막이판이 붙어 있었다. 정작 그 옆 배수로는 낙엽과 담배꽁초로 막혀 있었다. 은평구의 60대 정육점 주인은 2년 연속 가게가 잠겨 장판을 두 번 새로 까는 동안 지자체에서 한 번도 나와보지 않았다고 했다. 신안동에 사는 한 주민은 “대책은 있다는데 못 믿겠다”고 했다. 한번 잠긴 건물이 또 잠겼다는 건, 첫 번째 침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원인을 따져 대책을 세우고 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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