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담당 부서장인 A팀장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회사가 피진정인으로 사건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건의 행위자가 회사의 조사에 대하여 ‘일방적이고 편파적으로 진행되었으므로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의 객관적 조사 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자신에 대해 ‘피신고인으로서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것은 인권 침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외부 기관에 조사를 의뢰하여 진행하였음에도 "사건의 당사자인 내가 지목한 직원을 참고인으로 조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외부 조사자로부터 조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 안내를 받지 못했다"며 ‘객관성이 결여된 차별적 조사’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내 고충 사건은 형사사건 준하는 방어권 보장할 의무 없어
사내 고충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신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근로기준법에는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지 않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결과로 징계 등의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신고인의 당사자로서의 권리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내 사건에서의 인권 보장 차원에서의 소위 방어권이라는 것은 형사 사건에서의 방어권(진술을 거부할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합니다. 직장 내 고충 사건의 성격은 형사 벌칙을 적용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기 때문에 내부 규정에 형사 사건에 준하는 수준의 방어권 보장을 마련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습니다. 별도의 취업규칙이나 징계 규정 등에 따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간혹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여 조력을 받겠다고 하거나 조사 시 배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조사자에 따라서는 허가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이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고충 사건의 조사는 발생한 사실에 대하여 확인하는 것이므로 사건의 당사자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법률 대리인의 조력이 필요한 상황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 조사자는 법률 대리인의 발언권을 제한하거나 퇴장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피신고인에 따라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전부 부인하는 취지로 답변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아가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사자 입장에서는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 및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피신고인의 이와 같은 진술 태도가 오히려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간과한 피신고인이 나중에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인정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편파적 조사라거나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는 직접적인 입증 자료가 없더라도 사실 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무조건적인 부인이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장보다는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요청하거나 정황에 대한 진술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피신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며 객관적 사실을 쫓아가는 조사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건처리 절차 점검 통해 당사자들의 권리 보장 범위 확인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결과로 징계 등의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신고인 역시 객관적 조사를 받을 권리와 신고 내용에 대하여 당사자로서 충분히 진술할 수 있는 기회, 자료 제출의 기회, 위원회의 위원 구성에 관한 기피 신청권, 징계 혐의에 대하여 항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합니다.
각 조직마다 고충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과 인사위원회의 결정을 구분하기도 하고, 인사위원회에서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과 징계 양정을 모두 결정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신고인에 대한 보호와 권리 보장이 잘 설계되어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징계대상자의 권리 보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인 또는 피해자의 권리에 해당하는 조항이 보이지 않는 규정도 상당합니다.
조사자의 조사 결과보고서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후 절차 전반에서도 당사자들이 출석하여 직접 진술하거나 자료의 제출이나 소명서 제출 등의 기회를 보장하고, 심의에 참여하는 위원들에 대한 제척·기피·회피 신청 제도를 마련하여 괴롭힘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과 징계의 결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결과에 대한 수용력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재심 제도는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보호 취지에는 반해
괴롭힘 성립 여부에 대한 결과에 불복하여 다시 판단해달라고 하거나 외부화되는 경우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사내에 재심 절차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을 두고 피신고인의 방어권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근로기준법 등에 특별히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행위자의 경우에는 징계 결정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 반면 피해자에게는 다양하게 부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할 괴롭힘 또는 성희롱 고충 사건의 특성과 관련 법률의 취지를 고려했을 때 사내 재심 절차를 따로 두게 될 경우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사내 처리 절차를 점검하고 개선할 때에는 피해자 보호 및 2차 피해 방지와 신속한 구제라는 피해자 권리 회복의 가치와 목적성에 부합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박윤진 행복한일 노무법인 공인노무사/고충예방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