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개최
대형 인체조각 등 20여점
개막 3주만 10만 관객 돌파
일부 작품 1~2시간 대기도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론 뮤익은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인체 조각을 통해 현대인들 삶의 면면을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인간 형상은 때로는 작게 축소되고, 때로는 거대한 크기로 확대돼 보는 이로 하여금 일상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 분노, 공허함 등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한다. 그의 조각은 현대인의 자화상인 셈이다. 하지만 실물과 다른 크기에 관객은 곧 이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론 뮤익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인 ‘Ron Mueck’이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오는 7월 13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스크 II’(2002) ‘침대에서’(2005) 대형 인체 조각을 비롯해 지난 30여 년 간 영국에서 활동해온 론 뮤익의 주요 대표작과 제작 과정을 담은 스튜디오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 등 24점을 선보인다.
론 뮤익은 호주 멜버른에서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영화, TV 프로그램 등에 필요한 마네킹과 소품을 제작하던 그는 1996년 작가 폴라 레고의 의뢰로 조각 ‘피노키오’를 만들며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죽은 아버지’(1996-1997)가 영국 런던 왕립미술완에서 열린 젊은 영국작가 기획전에서 주목을 받으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됐고, 이후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을 순회하며 소개돼 왔다.
이번 전시는 론 뮤익의 시기별 주요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된 작품 수는 20여점이지만 큰 작품이든 작은 작품이든 관람객이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각각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널찍하게 배치된 점이 눈길을 끈다. 162×650×395㎝ 크기의 대형 작업인 ‘침대에서’(2005)를 마주할 때는 마치 난장이가 되어 한 인물의 방에 몰래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여성이 침대에서 턱에 손을 괴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작품인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해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 걸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 다른 전시작 ‘쇼핑하는 여인’(2013)은 육아와 일상에 찌든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한다. 갓난 아기를 아기띠에 매고 방금 막 장을 보고 나온 듯한 이 여인의 양손에는 식료품 등이 가득한 비닐 봉투가 들려 있다. 아기는 간절히 엄마를 올려다 보고 있지만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엄마는 아기와 눈을 맞출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아기를 감싼 코트는 단단히 여며 있지만 집에 있다 대충 나왔는지 발목은 훤히 드러나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평범한 거리에서 목격한 한 장면에서 비롯됐다.
론 뮤익 회고전은 개막 직후부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전시 개막 후 3주 만인 1일 누적 관객이 10만명을 돌파했다. 작품이 극사실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직관적이고, 추상 미술에 비해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오후 찾은 전시장은 평일임에도 론 뮤익 전시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긴 대기줄을 이뤘다. 암실에 들어가 인물의 얼굴을 마주하듯 감상하도록 연출된 작품 ‘어두운 장소’(2018)의 경우, 1~2시간씩은 대기해야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북적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20대 관람객이 눈에 띄게 많은 편이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지난 토요일에는 하루에만 1만2000명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한편 인간의 존재와 삶, 죽음에 대한 근원적 의미를 되돌아보는 론 뮤익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워크숍, 디지털 콘텐츠 등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인체 조각으로만 9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탐구해온 론 뮤익의 작품세계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총망라해 선보이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현대 조각 거장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하고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경험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