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이오 혁신 R&D가 뿌리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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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바이오 혁신 R&D가 뿌리내리려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원주민의 독특한 문제 해결 방식을 소개했다. 숲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발견하면, 당장 쓸모를 알지 못하더라도 일단 챙긴다. 그리고 훗날 그 물건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브리콜라주(bricolage)’라 불렀다. 이는 오늘날 바이오 혁신 기술의 방식과도 닮아 있다.

바이오 연구 패러다임은 탐색과 학습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최근 연구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 바이오와 합성생물학, 바이오파운드리가 있다. 이들 분야는 불확실성과 탐색을 전제로 발전해 왔다. AI는 방대한 생명 데이터를 통해 가능성을 예측하고, 합성생물학과 바이오파운드리는 그 가능성을 실제 생명 시스템에서 빠르게 구현하고 반복적으로 검증한다.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축적된 지식이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 방식이 요구하는 환경과 우리의 제도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바이오 연구·개발(R&D)은 기획 단계부터 명확한 타깃과 활용 시나리오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바이오 연구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 상용화가 가능한가”, “활용 가능한 결과물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다. 이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혁신의 출발점에서 적절한 질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바이오 연구의 핵심 가치는 성공 자체보다 실패의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에 있다. 어떤 가설이 왜 실패했는지, 어떤 조건에서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다음 설계의 출발점이 된다. 연구는 처음부터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시도해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브리콜라주의 관점이 필요하다. 당장 활용처를 설명하기 어려워도, 훗날 다른 기술이나 산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은 설계와 실험을 더 많이 허용해야 한다. 지금은 실패처럼 보여도, 새로운 생명 설계 원리를 드러내는 연구가 결국 다음 혁신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실패를 통제하려는 제도 아래에서는 도전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가 국가 R&D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전면 폐지하기로 한 것은 과학기술 정책의 신속성과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혁신적 첨단 바이오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불확실성을 담아낼 수 있는 R&D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바이오 데이터의 축적과 공유를 중시하는 연구 문화와 유연한 연구 환경 구축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 기술 혁신은 관리의 결과가 아니라 도전과 학습의 산물이다. 연구자가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실험할 수 있을 때 혁신의 싹이 자란다. 연구기관이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할 때, 우리나라 바이오 R&D는 세계 무대에서 더욱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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