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로 휘어잡은 랑랑, 몰아치다가도 섬세한 타건에 얼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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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사이틀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으로 무대 장악
속주에 테크닉 더해 빠르게 음량 변화 표현
'스페인 모음곡'에선 힘차게 저음 연출

랑랑 만큼 초대형 무대에 많이 올라 본 피아니스트는 찾기 어렵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파리 올림픽, 밀라노 동계올림픽 등의 개막식과 노벨상 시상식에서 연주했다.

전 세계에서 클래식 팬덤을 구축한 랑랑이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올라 한국 관객을 만났다.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등 여러 작곡가의 곡에 화려한 기교를 덧칠한 공연을 120분간 선보였다.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랑랑이 연주 직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랑랑이 연주 직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랑랑을 설명할 땐 테크닉이 빠지지 않는다. 빠르고 힘차게 두드리면서도 건반마다 음량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기술력은 그의 상징이 됐다. 다만 이 기교를 담은 연주가 과장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허공을 가르는 현란한 몸짓이 더해질 땐 더욱 그렇다. 그가 자신만의 색을 무대에서 온전히 보여주는 음악인이란 건 분명하다.

이날 무대에 오른 랑랑은 허리 숙여 인사한 뒤 바로 모차르트의 론도 라장조를 연주했다. 시작부터 튀었다. 그는 박자에 맞춰 왼발을 굴리며 바닥을 두드리길 반복했다. 마룻바닥이 쿵쿵 울리는 게 공연 개막을 알리는 드럼의 킥 소리 같았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두드림

인상 깊은 첫 곡을 마치고 객석에 다시 인사한 랑랑은 바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으로 넘어갔다. 의자에 앉아 연주하기까지 끊김 없는 흐름으로 큰 소리를 내며 처음부터 단번에 관객을 몰입시켰다.

‘몰입할 준비를 하라’고 알리기보다는 ‘몰입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는 쪽이었다. 대중가요라면 다비치의 ‘8282’나 송창식의 ‘왜불러’처럼 초장에 힘을 준 뒤 그 기세를 살려가는 식이었다. 속도감과 큰 음량을 살린 랑랑의 연주는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많은 다른 피아니스트들과는 접근법이 달랐다.

2악장에선 레가토(두 음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주법)를 살리는 오른손과 스타카토처럼 저음을 끊어 연주하는 왼손이 불과 얼음처럼 대비됐다. 3악장은 프레이징(악절 구분)을 촘촘히 나눠 지키면서도 속도감을 살렸다. 페달을 약간 과하게 쓰는 듯했지만 살짝 건조한 공연장의 잔향감을 보완하기에 좋았다.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는 센 강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대비 요소로 기능했다.

음량 차이를 바꿔가면서 강약 대비를 색다르게 표현하려는 랑랑의 모습은 피아노의 물성을 실험하는 것 같았다. 타악기의 여림과 강함을 다루는 듯했다.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랑랑이 연주 직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랑랑이 연주 직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이어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31번에서도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매력이 두드러졌다.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강렬한 타건은 속도와 기교가 더해진 덕분에 능숙한 대장장이의 재빠른 손길과 닮아 있었다.

다이내믹(음량 변화)을 짧고 뚜렷하게 풀어나간 덕분에 연주 중간중간 놀라운 순간이 많았다. 음악으로 고막에 따귀를 맞아 고개가 돌아갔는데 다른 쪽 고막에도 따귀가 날아와 고개가 원위치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1부를 마친 랑랑은 입맞춤한 양손을 관객에게 높이 들어보이는 것으로 객석의 열띤 박수에 답했다.

라라랜드로 관객에게 인사

2부 공연은 알베니즈의 ‘스페인 모음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첫 곡인 그라나다도 랑랑 특유의 강건한 타건이 돋보였다. 별다른 지형물 없이 조금은 추운 3월 봄바람이 객석으로 부는 인상이었다. 다음 곡 카탈루냐는 랑랑의 탄탄한 기본기와 과감한 루바토(연주자의 자율적인 템포 조절)가 속주로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세 번째 곡 세비야를 연주할 땐 저음부의 리듬감을 강조해 증기기관차가 약동하는 듯한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다음 곡으로 선보인 그라나도스 ‘탄식, 또는 마하와 나이팅게일’에서도 랑랑만의 음색이 뚜렷했다. 그는 여백을 살리는 대신 주저 없이 감정을 담아 여인 마하의 번민을 선명하게 그렸다. 록 발라드에서 볼 것 같은 강렬한 감정 표현이었다. 말미에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소리를 재현한 고음부는 소리가 두꺼우면서도 또렷했다.

다음 곡인 리스트의 ‘위로’ 중 2번은 나이팅게일이 마하에게 건네는 위안의 연장선이었다. 건반에 몸을 기대다시피 기울인 랑랑의 손길은 섬세하면서도 그 사이에 마하의 번뇌가 드문드문 드러났다. 감미롭게 연주가 끝날 땐 객석 일부에서 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마지막 곡인 리스트의 ‘타란텔라’는 랑랑이 자신의 기교를 마음껏 쏟아내는 피날레였다. 그는 1초 안에 10번 이상 건반을 치며 명료한 음들을 쏟아내면서도 재빠르게 음량에 변화를 줬다. 순식간에 음악이 그려내는 장면이 바뀌는 게 숏이 금방 달라지는 현란한 영상 광고 같았다.

관객들이 현란함에 취했을 즈음 랑랑은 앙코르로 영화 ‘라라랜드’의 주 테마곡을 연주했다. 꿈과 설렘이 섞인 멜로디를 변주하며 애드리브를 더할 땐 랑랑만의 재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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