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올해 4월30일에 ‘기업결합 심사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공개해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전통적인 경쟁법의 통념과 상당히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기존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시장의 경쟁 요소로 여겨지지 않던 다양한 ‘정책적 요소’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사항으로 삼겠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을 중요 심사요소로 제시
EC는 개정안을 통해 EU 기업결합 심사 제도가 역내시장의 경쟁력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포함한 광범위한 정책 목표를 지지한다는 점을 선언했다. 구체적으로는 회복탄력성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혁신 및 투자 경쟁을 보호하고, 핵심 기술과 투입재, 방위산업 분야에서 산업적 능력 및 전환을 촉진하겠다고 명시했다. 또한 지속가능성과 저탄소기술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친환경 혁신 경쟁을 보존하며, 미디어 분야의 집중을 제한해 정보 소스와 시민들의 선택 다양성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지정학적 환경과 통상 환경이 급변하였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산업적 규모와 글로벌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기업결합 심사 시 규모, 혁신, 투자, 회복탄력성을 친경쟁적인 요소로 보아 적절한 고려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가격, 산출량, 품질, 혁신, 소비자 선택권을 넘어 회복탄력성(공급의 안정성 포함), 지속가능성, 투자, 프라이버시, 미디어 및 문화의 다양성 등과 같은 여러 정책적 요소들을 ‘경쟁 요소(parameters of competition)’의 범주로 명시했다. 그리고 기업결합이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도록 했다.
특히 ‘회복탄력성’이 중요한 심사요소로 제시됐다. 심각한 충격을 예견하고 견디며 회복하여 지속적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과 준비태세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가격 경쟁 요소들은 쉽게 계량화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개정안은 가격 및 비가격 경쟁 요소들을 비교형량 함에 있어 EC가 재량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공정위도 ‘경제 효율성 증대효과’ 인정
유럽의 이 같은 변화는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기준은 예전부터 본래적 의미의 효율성이라 할 수 있는 생산·판매·연구개발 등에서의 효율성 증대효과에 더해, ‘국민경제전체에서의 효율성 증대효과’를 인정해 왔다.
고용증대, 지방경제 발전, 전후방연관산업 발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등 국민경제생활의 안정, 환경오염 개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효율성 증대효과로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효율성 증대효과를 판단함에 있어서 기업의 생산·판매·연구개발 등의 측면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균형발전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2006두6659판결).
그러나 공익적 요소 내지 산업정책적 요소를 기업결합의 효율성으로 고려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통념에 따라서, 실제 집행 과정에서 공정위는 2000년대 이후 국민경제전체에서의 효율성 증대효과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왔다. 실제로 정책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효율성 증대효과로 인정하게 되면 기업결합 심사가 엄밀한 규범적·경제적 분석을 벗어나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과 정치적 논리로 흐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학계와 실무계에서 경제위기 상황 등 예외적인 경우에는 이러한 정책적 요소를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반론도 제기돼 왔다.
EC의 이번 개정안은 최근의 국제 정치적 상황과 통상 환경 변화와 맞물려 우리에게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자국 중심의 산업정책이 부활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우리도 기업결합 심사 시 가격, 산출량, 품질, 혁신 등의 전통적인 경쟁 요소를 넘어 정책적 요소들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은 그러한 논의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정책적 요소를 고려하기로 문을 연다면, 과연 어떠한 가치들을 심사대에 올릴 것인지, 자의적인 판단을 배제하기 위한 실체적 요건과 절차적 장치는 어떻게 촘촘히 구성할 것인지, 정책적 요소에 대한 판단을 경쟁당국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과연 적정할지 등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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