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화는 뜨끔할까 억울할까…본질은 신뢰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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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이 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보완에도 여전한 당국·시장의 의구심
갈길 먼 신뢰 회복…내세운 명분에 맞는 행보 필요

  • 등록 2025-05-02 오전 5:49:19

    수정 2025-05-02 오전 5:49:19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유상증자에 제동이 걸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진짜 속내는 오해를 받아 억울할까, 아니면 승계 재원을 확보해보려던 속내를 들켜 뜨끔할까. 어느 쪽이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추진한 2조3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논란이 한 달을 넘기면서 이제 단순한 자금조달 이슈를 넘어 자본시장 신뢰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략적 사업 재편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시장의 알만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승계 재원 확보’라는 속내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금융감독원이 이례적으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두 번이나 반려하며 구조와 내용을 보완하라고 요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달 30일 세 번째 변명을 준비해 제출했지만, 금감원과 시장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상증자 정정 보고서를 1200페이지로 늘리든, 2000페이지로 늘리든 그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시장 소통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까닭에 생겨난 불신을 덮기는 쉽지 않다.

물론 상장회사는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권리가 있다. 성장성이 높은 사업 투자를 위해 자금을 모아보겠다는 기업의 경영전략도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경영전략은 주주와 시장의 신뢰가 뒷받침 되어야만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이 주주와 시장의 불신, 몰이해를 무시하고 자금조달의 명분만 밀어붙이면 시장을 자금조달 창구나 수단으로만 본다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다. 그 자금조달이 원만히 이뤄질 수 없음은 물론이다.

천무 다연장로켓.(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행동을 했다. 한화오션 지분을 비싸게 인수하고, 불과 며칠 뒤 주주들에게 상당한 자금 부담을 지우는 그림을 만들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3월 한화에너지·한화에너지싱가포르·한화임팩트파트너스 등이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고가에 인수했다. 유상증자를 공시하기 약 1주일 전의 일이었다. 시장에서는 ‘자체 자금’으로 소화했다고 이해하고 있었으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불과 며칠 뒤 곧바로 3조6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시장 시선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 큰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회사가 왜 한화오션 지분을 사는데 거액을 썼을까 의문이 나오는게 당연하다. 한화오션 인수가 반드시 필요했는지 사업적 명분도 빈약했다. 한화오션에 대한 계열사 간 자산이동이 이뤄졌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한화오션 인수에 들어간 자금의 상당 부분을 일반 주주들에게서 보전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출 수단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유상증자로만 손쉽게 거액을 얻으려던 점도 비판받는 대목이다. 한화에어로는 ‘방산·우주 부문 강화를 위한 투자’라는 명분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미 자금조달의 정당성보다 목적의 정당성이 심각하게 의심 받고 있다.

타이밍은 더욱 석연치 않다. 김승연 한화 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세 아들에게 넘기기로 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승계 구도가 본격화된 상황이다. 주요 계열사의 자금조달이나 자산재편이 오너 일가의 이익과 얼마나 분리돼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이 지분을 증여했다고 해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자금이 직·간접적으로 승계와 연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투자를 명분으로 걸고 승계비용을 주주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의혹을 받는 한화 논란은 시장에 작지 않은 상흔을 남기고 나쁜 선례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거액의 유상증자를 시도하는 기업들은 한 번쯤 그 의도를 의심받게 될 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본시장 신뢰를 훼손한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내걸었던 명분에 맞는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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