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硏 있는데 김치진흥원 설치법 또 발의… 재정 이중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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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公기관 신설법 32건 발의
방위산업-해녀-한복진흥원 등 남발… 국회 검토보고서 “업무 중복” 지적
의원들 ‘지역구 챙기기’ 성격 논란… 정치권 ‘낙하산 인사’ 되풀이 우려도

#1.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은 지난해 6월 ‘국립 김산업진흥원’ 설립을 뼈대로 하는 김 산업 지원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 출연금 등을 바탕으로 김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자는 것. 법안 발의 당시 박 의원은 “해남 등지에 여건이 조성되면서 국립 김산업진흥원 건립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지역구 유치를 시사했다.

#2.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충남 서산-태안)이 지난해 8월 대표 발의한 탄소중립·녹색성장법 개정안엔 한국탄소중립진흥원 설립 근거가 포함됐다. 하지만 탄소 중립과 관련해선 현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와 탄소중립지원센터 등이 이미 운영되고 있다.

3일 본보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5월 제22대 국회가 개원한 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연구소’ ‘진흥원’ 등 공공 업무 수행 기관 신설 법안이 32건 발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 부담과 운영의 비효율성 등 공공 부문 비대화가 주요 사회문제가 된 상황이지만 국회가 나서 공공기관 난립을 부추기는 것.

● 공공기관 난립 부추기는 국회

여야 의원들은 22대 국회에서 방위산업진흥원, 김치산업진흥원, 한복진흥원, 해녀문화연구원 등 한국 산업과 관련된 기관부터 문화, 재난,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앞다퉈 기관을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상당수 법안은 국회 검토보고서에서 기존 공공기관들과의 업무 중복 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의원이 입법한 법안이 상임위원회라는 ‘1차 관문’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은 셈이다. 국회 검토보고서는 국회법에 따라 각 상임위에 속한 국회 사무처 소속 전문위원들이 평가하는 보고서다.

민주당 주철현 의원(전남 여수갑)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김치산업진흥원’ 설치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세계김치연구소’와 김치산업 진흥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체가 구성돼 운영 중”이라고 지적했다. 농해수위는 민주당 임호선 의원(충북 증평-진천-음성)이 추진하는 ‘전통주산업진흥원’에 대해서도 “농촌진흥청, 시도 농업기술센터 등의 기관에서 전통주 연구개발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므로 별도의 기관 신설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들 법안은 정부가 새 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출연하거나 보조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가 비용을 출연하면 기획재정부 지정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전환될 수 있다. 신설될 경우 재정적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을 받은 기관 설립 법안도 있었다. 민주당 허성무 의원(경남 창원 성산)은 지난해 9월 한국방위산업진흥원 설립을 골자로 하는 ‘한국방위산업진흥원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인원과 조직이 2021년부터 확대돼 종사자가 지난해 기준 644명이고, 예산 역시 2021년 3515억 원에서 지난해 9259억 원으로 늘었다. 국방위는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진흥원을 설립하는 것은 기관 운영을 위한 재정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기관 설립 시 민간 분야의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국민의힘 김종양 의원(경남 창원 의창)이 대표 발의한 ‘방위산업부품연구원’ 설립법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국회 국방위에 “부품 개발 관련 민간 기업의 역할을 침해할 수 있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공공기관 비대화로 “미래 세대 부담”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정부 지원이 필요한 기관 설립에 나서는 이면에는 ‘지역구 챙기기’ 성격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위성곤 의원(제주 서귀포)이 주도하는 ‘해녀문화연구원’ 설립의 경우 위 의원의 지역구 공약이었다. 위 의원은 지난해 법안을 발의한 뒤 “국가가 해녀문화연구원과 해녀박물관을 설립 운영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방위산업 관련 진흥원 및 연구소 설립법을 각각 발의한 허, 김 의원의 지역구는 모두 창원시다. 국내 방위산업의 중심지로 꼽히는 지역구를 고려한 민원성 법안 발의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있는 경우 통과 가능성이 낮더라도 일단 발의부터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번 설립된 공공기관은 다시 없애기 어렵고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 같은 기관들은 전문성과 관계없이 정권에 기여한 ‘낙하산 인사’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적 발전이라는 효과가 있어야 공공기관 설립이 타당하나 새롭게 발의된 기관 설립 법안들의 상당수가 기존 공공기관들과 역할이 겹치거나 너무 세세한 분야에 집중하고 있어 정책적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번 공공기관이 설립되면 없애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만 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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