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주가 27일(현지 시간) 미 텍사스주 우들랜드의 더 클럽 앳 칼턴 우즈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셰브론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6번 그린에서 퍼팅 준비를 하고 있다. 김효주는 최종 합계 7언더파 281타로 린디 던컨(미국), 아리야 쭈타누깐(태국), 인뤄닝(중국), 사이고 마오(일본)와 동타를 이뤄 연장 끝에 마오에게 패해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우드랜드(미국) ㅣ AP 뉴시스
LPGA 첫 메이저 대회인 쉐브론 챔피언십에서 사이고 마오가 연장전 끝에 우승했다. 메이저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다섯 명이 겨루는 연장전이었다. 김효주,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인뤄닝(중국), 린디 던컨(미국)과 사이고 마오(일본)가 벌인 연장전은 예상 밖의 졸전이었다. 어떤 선수에게는 우승을 위한 집념이 없어 보였고, 어떤 선수에게는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가 없어 보였고, 어떤 선수에게는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침착함이 없어 보였다.
쭈타누깐은 마지막 홀까지 한 타 차 선두였다. 장타자인 그녀의 18번 홀 두 번째 샷은 그린을 벗어났다. 그린 밖 러프에서 어프로치 샷을 시도할 때, 카메라 각도상으로 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히 샷을 시도한 것으로 보였지만, 공은 여전히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진행자가 당황해 해설자에게 “이것은 샷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물으니, 해설자도 당황해 “나도 당신이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봤을 뿐이다”라고 얼버무렸다. 다른 각에서도 본 카메라에는 공이 웻지에 맞고 움직인 것이 보였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 스트로크였다. 어이없는 실수로 쭈타누깐이 보기를 범하며 8언더파에서 7언더파로 내려왔다.
같은 시간 7언더파로 경기를 마친 김효주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김효주는 연장전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연습하지 않고 있었다. 김효주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웠다. 쉐브론 챔피언십을 특별한 것이 없는 많은 대회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태도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저스틴 로즈가 보여준 태도와 대비되었다. 한 타를 뒤진 채 경기를 마친 저스틴 로즈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에 열중했고, 로리 매킬로이가 짧은 퍼팅을 놓치면서 연장전에 들어갔다.
쭈타누깐이 보기를 범하자 비로소 연습장을 찾은 김효주는 진지한 연습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가방을 챙겨 골프 코스를 떠나는 다른 선수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연장전이 결정되고 다른 선수들이 카트를 타고 18번 홀 티샷 박스를 향할 때 김효주는 혼자 걸어가는 여유를 보였다. 보다 못한 주최 측에서 카트를 가져와서 김효주에게 타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18번 홀에서 제일 먼저 티샷을 한 김효주는 처음부터 투온의 의지가 없었다. 평상시보다 더 부드러운 스윙으로 비거리 210야드짜리 드라이버 샷을 쳤다. 김효주보다 티샷을 짧게 보낸 선수는 티샷에서 실수를 한 린디 던컨뿐이었다.
티샷을 멀리 보낸 세 명의 선수가 투온을 시도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김효주는 망설이지 않고 쓰리온을 위해 레이업을 단행했다. 그것은 본인이 게임 플랜이었지만, 시청자에게는 승리에 대한 집념,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가 모자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별다른 기회를 잡지 못하고 김효주는 무력하게 연장전에서 패했다.
인뤄닝은 승리에 대한 집념과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를 연장전에서 보여 주었다. 다부지게 친 두 번째 샷은 물을 넘어 핀 가까이에 붙었다. 이글 기회였다. 그러나 라이를 너무 많이 계산한 그녀의 퍼팅은 홀컵을 훌쩍 지나쳤다. 두 번째 퍼팅마저 실패하며 우승에서 스스로 멀어졌다. 쭈타누깐과 인뤄닝은 마지막 순간에 챔피언으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침착성을 지니지 못했다.
레이업으로 쓰리온을 선택한 린디 던컨은 세 번째 샷에서도 그린에 공을 올리지 못하고 탈락했다. 작은 키의 사이고 마요는 두 번째 샷에서 그린을 훌쩍 넘겼지만, 어프로치로 공을 핀에 붙이고 버디에 성공하며 메이저 챔피언이 되었다.
사이고 마오(가운데)가 27일 미국 텍사스주 우들랜드의 더 클럽 앳 칼턴 우즈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셰브론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연못 세리모니를 하고 있다. 우드랜드(미국) ㅣ AP 뉴시스
이번 쉐브론 챔피언십은 우승 자격이 있는 선수가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대회였다. 4라운드 시작 전에 해설을 맡은 트리시 존슨에게 진행자가 우승 후보를 꼽아 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최혜진을 꼽았다. 많은 국내 골프 팬은 유혜란을 우승 후보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혜진과 유혜란은 전반에만 4오버파를 치면서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대회가 열린 우드랜드 골프 코스는 그린이 단단하여 공을 잘 받아주지 않았기에 선수들에게 버디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런 것을 고려해도 실망스러운 메이저 대회 최종 라운드였고, 연장전은 골프 역사에 남을 졸전이었다. 그럼에도 게임은 반드시 승자를 가려내어 상금과 명예를 선물한다. 연장전에서는 네 명이 패배하고 한 명만 승리하지만, 어이없는 실수를 한 인뤄닝과 쭈타누깐보다 김효주의 패배가 훨씬 더 무력해 보였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골프: 골프의 성지에서 깨달은 삶의 교훈’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