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불교미술전 '어메이징 타일랜드'… 국립중앙박물관서 9월6일까지
현지 교과서 실린 '걷는 부처'
뒤꿈치 든채 은은한 미소 눈길
"韓은 '싱킹붓다' 반가사유상
태국은 '워킹붓다' 대표 작품"
태국 국보급유물, 첫 韓나들이
작은 부처 새겨진 관음보살상
가까스로 반출 허가받아 전시
왕실공예·'콘' 가면도 한곳에
한국의 반가사유상에 비견되는 태국 불교미술의 걸작 '걷는 부처'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왔다. 앉아서 명상하는 대신 중생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의 이 불상은 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시실1에서 '어메이징 타일랜드: 태국미술명품전'을 열고 있다. 태국 문화부 예술국과 함께 여는 이번 전시에는 조각, 회화, 공예 등 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239점이 선보인다. 태국 미술 교과서에 실리는 국보급 유물들로, 방콕국립박물관을 비롯한 태국 전역의 국립박물관 21개 기관이 참여했다. 현지에서도 한자리에서 보기 어려운 대표 작품들을 모은 데다 일부 유물은 이번 전시로 해외에 처음 공개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14세기 수코타이 왕국 시대에 제작된 '걷는 부처'다. 태국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부처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하늘에 올라가 설법한 뒤 세 개의 보배로 만들어진 계단으로 지상에 내려왔다는 전설을 형상화했다.
불상은 오른쪽 발의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린 채 금방이라도 걸음을 옮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적인 불상에서는 보기 드문 우아한 운동감이 돋보인다. 최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국에 '싱킹 붓다(Thinking Buddha·사유하는 부처)'가 있다면, 태국에는 '워킹 붓다(Walking Buddha·걷는 부처)'가 있다"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직접 다가가는 부처의 모습을 담은 태국 불교미술의 걸작"이라고 말했다. '걷는 부처' 주변에는 불상들이 늘어선 공간을 조성해, 관람객이 마치 불상들 사이를 거니는 듯 작품과 마주하도록 연출했다. 수코타이 양식의 불상은 한국 불상과 사뭇 다르다. 타원형 얼굴과 활처럼 휜 눈썹을 지녔다. 눈매는 아래를 향해 있으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길고 유연한 팔다리도 특징이다. 15세기 란나 왕국 시대에 제작된 '발자국을 남기는 부처' 불상은 부처가 걸어가는 모습과 발자국을 남기는 장면을 동시에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는 태국에서 문화재 해외 반출을 심의하는 위원회로부터 가까스로 반출 허가를 받은 유물들도 포함됐다. 그중 '팔이 여덟 개인 관음보살'은 8~9세기 제작된 청동상으로 관, 귀걸이, 팔찌, 허리 장식 등 다양한 장신구를 화려하게 표현해 주조 기술이 돋보인다. '부처의 전생에 말로 태어난 이야기를 새긴 석판'도 어렵게 전시가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수코타이 시대의 불교 사원에 있던 석판 부조다. 부처가 전생에 인도 브라흐마닷타왕이 아끼던 말로 태어나 나라를 침략한 일곱 왕에게 맞서 싸운 이야기를 그림으로 매우 세밀하게 표현했다.
'몸에서 무수한 부처를 탄생시키는 관음보살상'도 태국 문화부 예술국이 현지 위원회를 설득해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이 유물은 태국에 미친 크메르 문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불상으로, 상반신에 빽빽하게 작은 불상이 새겨져 있다. 관음보살의 모든 모공에서 부처가 태어나며 그 안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신앙을 표현했다.
태국에서 처음으로 해외 전시에 나선 유물도 있다. '에메랄드 사원의 옛 중문'과 아유타야 왕조 시기에 제작된 '보관불'이 대표적이다. 두 유물 모두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국외에 공개된다. 에메랄드 사원의 옛 중문은 사자를 밟고 선 두 수문장을 목판에 매우 정교하게 조각했다. 그 후 조각에 금박을 입히고 사이사이에 색유리를 박아 넣는 상감기법을 더해 태국 왕실 공예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보관불은 왕관을 쓰고 왕의 장신구를 착용한 불상이다. 불교와 왕권이 결합한 태국 문화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힌두교 문화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팔이 8개인 청동상 '하리하라'는 세계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비슈누의 능력과 세상을 파괴해 새 질서를 만드는 시바의 능력이 합쳐진 존재를 형상화했다.
전시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의 라따나꼬신(방콕) 왕조에 이르기까지 태국 미술을 폭넓게 조명한다. 타이족 왕국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를 다루는 공간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국 반치앙 선사유적에서 발견된 '기하학무늬 토기'를 선보인다. 약 6세기 태국 중부 지역에서 시작된 드바라비티 문화권에서 제작된 '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수레바퀴(법륜)' 석상도 전시된다. 태국 땅이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가 오가던 교류의 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전시는 13세기 이후 타이족이 세운 수코타이·란나·아유타야 왕국의 문화를 종교, 무역, 왕권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조명한다. 수코타이를 대표하는 상칼록 도자기를 선보이는데, 이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수출되며 당시 타이 왕국의 활발한 교역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이다. 막강한 권력을 구축한 왕실의 위상도 다양한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유타야 시대 불탑에 봉헌된 '왕의 상징물 모형'은 왕권을 상징하는 대표 유물이다. 왕관, 검, 지팡이, 부채·불자, 신발 등 국가 의례 때 국왕만 사용할 수 있던 물품을 정교한 금속공예 기술로 축소 제작해 불탑 안에 봉헌했다.
전시 후반부에는 1782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라따나꼬신 왕조의 미술을 왕실과 불교 두 축으로 살핀다. 왕실은 동남아시아 최고의 성물로 꼽히는 에메랄드 불상을 왕궁 내에 모시고, 불교 경전과 승단을 정비했다. 이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과 권위를 강화하고 예술 부흥을 이끌었다. 전시에는 태국 전통 가면극인 '콘' 가면과 화려한 금속 공예품, 면직물 등을 함께 소개해 왕실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태국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종교와 미의식, 문화적 정체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태국 문화부 예술국의 토사폰 시사만 부국장은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가운데 다수는 역사·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일부는 해외에 처음 공개된다"며 "이번 전시가 한국인들이 태국의 예술과 역사, 오랜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6일까지.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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