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할매 래퍼 그룹
칠곡 스타 '수니와 칠공주'
최고령 91세·막내 77세 등
평균나이 82세 8인조 그룹
한글 뒤늦게 배우며 래퍼로
'환장하지' 등 10여곡 발표
매주 2회 경로당서 맹연습
"완전 딴세상 사는 듯 행복"
"나 어릴 적 친구들은 학교 다녔지! 나 담 밑에서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지! 설거지, 애 보기! 내 할 일은 그거지! 환장하지!"
지난달 29일 오후 1시 30분에 찾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4리 경로당. 경로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들이 '라임'에 맞춰 흥얼대는 랩 소리가 들렸다. 주인공은 2023년 8월 결성된 전국 최초의 할매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였다. 힙한 모자와 옷, 장신구 등을 걸치며 젊은 래퍼 못지않은 패션까지 자랑했다. 야속한 세월 탓에 노래가 끝날 때마다 호흡은 가빠졌지만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수니와 칠공주의 평균 나이는 82세다. 리더 박점순(84), 왕언니 추유을(91), 분위기 메이커 이필선(88), 베스트 드레서 홍순연(82), 브레인 이옥자(80), 소녀 감성 김태희(80), 귀염둥이 막내 장옥금(77), 3개월 전 영입된 새 멤버 이선화 할머니(77)까지 총 8명으로 구성됐다. 그룹명은 리더인 박점순 할머니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순'을 변형한 '수니'와 일곱 명의 멤버란 의미로 지어졌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경로당에서 모여 연습을 하고 공연이 있을 때는 전날 밤까지 맹연습에 나선다. 박점순 할머니는 "나이가 들다 보니 가사 외우는 게 힘들다. 가사를 안 까먹으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들이 현재까지 발표한 곡은 10곡.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보인 공연만 30차례에 달한다.
모두 고령이지만 전국 곳곳을 다니며 공연할 때마다 힘든 줄 모른다고 한다. 이필선 할머니는 "젊을 때는 농사일하고 살림하고 아이들 키운다고 어디 한번 제대로 놀러가 본 적도 없었다"며 "지금은 공연하러 이곳저곳 놀러 다닌다고 생각하니 어디를 가도 힘든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연 횟수가 많아지고 알아보는 팬들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팬클럽도 등장했다. 박점순 할머니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하는데 아직은 쑥스럽다"고 했다.
할머니들이 그룹을 결성하고 랩을 하게 된 건 한글을 배우면서부터다. 가난 탓에 학교에 가지 못해 한글을 알지 못했지만 경로당에 마련된 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할머니들의 한글 선생님인 정우정 씨는 "한글을 가르치다가 유명 래퍼 '사이먼 도미닉'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박점순 할머니가 '이게 노래냐, 뭐냐'고 하시면서 '저건 나도 하겠다'고 말해 랩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한글 수업 중 할머니들이 쓴 시를 랩 가사로 다듬어 곡을 만들었고 할머니들 인생의 애환을 담아 가사를 랩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탄생한 곡들이 '환장하지' '학교 종이 댕댕댕' '에브리바디 해피' '황학골 셋째딸' '한글 배워 시 쓰고' 등이다. 평생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한을 표현한 가사들이다. 김태희 할머니는 "공부하는 것도 즐거운데 지금은 노래도 하고 만날 웃을 일만 있어서 몸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며 "자식들이 나 보고 연예인 됐다고 칭찬도 해준다"고 했다.
수니와 칠공주는 지난 2월 새 멤버를 찾기 위해 공개 오디션도 열었다. 지난해 10월 기존 멤버였던 서무석 할머니(87)가 별세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6대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새 멤버 이선화 할머니는 "지금은 완전히 딴 세상에 있는 것 같다"며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언니들을 따라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수니와 칠공주는 올해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바로 '해외 공연'이다. K팝 아이돌 그룹처럼 'K할매'들의 열정과 패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다. 이필선 할머니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세계 어디든 못 갈 곳이 없다"며 "이제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해외 공연 한번 해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올해 신곡 발표도 준비 중이다. 신곡은 '양성 평등'에 관한 내용이다. 박점순 할머니는 "5월에도 공연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 앞으로도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좋은 노래를 많이 불러주고 싶다"고 말했다.
[칠곡 우성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