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근로자야" 억대 연봉 임원들도 들고 일어났다…무슨 일?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15 hours ago 4

연봉 7억 넘는 임원 계약 종료에 '부당해고' 소송
재판부 "지휘감독 없이 독자적 업무수행...
급여 7억 넘어 일반 직원과 차별화" 지적
전문가 "근로자 보호 '임원 부당해고' 송사 급증"

연봉 7억 넘는 전무님도 "나는 근로자"...부쩍 늘어난 이 소송[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사진=챗GPT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경영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고액 연봉 임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근로자에게만 인정되는 노동관계법 상 보호 장치를 누리기 위해 자신이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임원들의 소송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지난 10일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임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2011년 9월 한 주식회사의 법무팀장으로 입사해 부장 직급에서 전무 직급까지 승진했고 2020년 3월 법무팀장으로서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2022년 4월경 A씨는 대표이사에게 투자회사의 상장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피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22년 5월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A씨는 회사와 퇴직 조건을 협의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2022년 6월 A씨는 부문장에게 조건 없는 사직 통보를 했고 같은 날 임직원 전원이 참여한 메신저 대화방에도 7월 11일자로 사직하겠다고 통보했다. 부문장은 즉각사직을 수락한다고 통보했다.

이후 마음이 바뀐 A씨는 사직 통보를 철회한다고 밝혔으나 회사 측은 이미 사직이 수리됐다고 통보했다. A씨는 이를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노동위는 'A씨가 근로자가 아닌 임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A씨의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A씨가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였다. 부당해고 규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임원에게는 민법상 위임계약이 적용되며 정당한 이유 없이도 언제든 해임이 가능하다.

법원은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임원이며, A씨의 사직 통보 효력도 인정된다며 회사와의 계약 관계가 적법하게 종료됐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임원이어도 업무집행권을 가지는 대표이사 등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노무를 담당하면서 그 노무에 대한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아 왔다면,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도, A씨는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법원은 "A씨가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경영상 의사결정에 관한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며 "이사회가 통상적 업무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각 펀드의 투자 전략과 집행의 적정성을 감독하는 역할까지 부여받았는데 이 회사의 주된 업무가 펀드의 투자·운용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A는 이사로 핵심적 의사결정에 관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A는 법무팀의 업무를 총괄하면서 법무팀의 성과나 직원 채용 여부를 부문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며 “A가 담당한 법률자문 등의 업무는 전문 분야로서 대표이사가 상시 지휘·감독 하기 어려웠고 실제로도 구체적인 업무 수행과정을 보고하거나 승인 받았다는 사정은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장소를 구속받지 않았던 것도 근거가 됐다.

고액의 급여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A는 매년 7억원이 넘는 고액 급여를 받았고, 그중 기본급은 2억8000만원, 성과급은 4억5000만원∼4억7500만원에 달했지만, 지원업무를 수행한 직원은 평균 연간 기본급 8400만원과 성과급 2500만원을 받았다”며 “급여 절대적 액수 자체로도 일반 직원과 차별화된 대우를 받았고 성과급이 일반 직원과 달리 기본급의 2배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원으로서의 업무성적에 따라 분배받는 보수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위임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므로, 이사는 사임의 의사표시가 대표이사에게 도달하면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고위 임원의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실질적인 업무 내용, 부여된 권한, 보수 체계, 독립적인 업무 수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확인시켜 줬다는 평가다. 대법원은 △임원이 전문 분야에 속한 업무의 경영을 위하여 특별히 임용됐는지 △해당 업무를 총괄하여 책임을 지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지 △등기이사와 마찬가지로 회사 경영을 위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일반 직원과 차별화된 처우를 받은지 등 구체적인 임용 경위, 담당 업무 및 처우에 관한 사정을 참작해서 임원의 근로자성을 판단한다.

한편 부당해고 구제신청,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청구, 실업급여, 산업재해보상 등 근로자에게 인정되는 보호를 누리기 위해 임원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임원은 곧 사용자라는 게 통념이었지만 최근엔 중앙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기되는 ‘임원의 부당해고’ 사건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임원 계약 시 직무 내용, 경영 참여 정도, 독립성 등을 명확히 계약서에 규정할 필요가 커졌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