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딸을 성폭행한' 아들의 어머니에 대하여…연극 '그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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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플레이시 작가 "문화적 경계 초월한 한국 무대, 가족이라는 사회적 기반 절감"
브렌다役 진서연 "모성 너머 한 인간의 적나라한 붕괴 보여주겠다"

"한국 공연을 보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원작이 토론토의 겨울, 유대인 가족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어느 것 하나도 교집합이 없는 한국 무대가 작품의 정수를 잘 전달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스토리텔링이 문화적 배경, 인종적 차이 등 다양한 경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연극 '그의 어머니' 원작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 국립극단 제공

연극 '그의 어머니' 원작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 국립극단 제공

27일 한국을 찾은 영국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는 배우 진서연, 홍선우, 류주연 연출과 함께 기자들을 만나 자신의 작품 '그의 어머니'를 본 소감을 이같이 전했다. 그는 전날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무대를 지켜봤고 관객과의 대화도 가졌다. 플레이시는 관객의 질문 속에서 "한국에서 가족이라는 사회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모성을 걷어낸 한 인간의 적나라한 심상 그려내

플레이시의 연극 '그의 어머니'는 하룻밤 사이 세 여자를 성폭행한 미성년자 아들을 둔 어머니 브렌다의 심리적인 붕괴와 그 가족을 둘러싼 사회적인 낙인을 다루는 작품이다. 눈 내리는 캐나다 토론토의 유대교 가정을 배경으로 가택연금 중인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2주를 보여준다.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던 이 작품은 지난 16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상영된다. 올해 재연에는 조만수 드라마터그가 새롭게 합류해 서사의 밀도를 더했고 브렌다 역할로는 배우 진서연을 원캐스트로 내세웠다.

연극 '그의 어머니'에서 주인공 브렌다 역을 맡은 배우 진서연. 국립극단 제공

연극 '그의 어머니'에서 주인공 브렌다 역을 맡은 배우 진서연. 국립극단 제공

진서연은 "대본을 받아들 때부터 심신이 너무 아팠다"며 "모성이 부서질 때 드러나는 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초연 당시 가해자 서사의 위험성을 경계하며 어머니 브렌다의 마음에 집중했던 류주연 연출은 이번 재연에서 변화를 꾀했다. 류 연출은 "지난해에는 어머니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등장인물 전체의 앙상블에 집중했다"며 "결과적으로 작품이 작년보다 훨씬 풍부해지고 서사의 결이 촘촘해졌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로버트 역의 홍선우 역시 캐릭터의 입체감을 더했다. 그는 "변호사를 직접 만나 자문을 구했는데, 실제로는 친한 지인의 아들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은 잘 수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하지만 로버트는 이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인물로 설정했다. 브렌다 역의 진서연 배우와 호흡하며 캐릭터가 더욱 명확해졌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서 모든 장면에 등장하며 극을 이끄는 진서연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다. 그는 "관리비 납부도 잊을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다"며 "17년 연기 생활 중 영화 '독전'의 보령, 철인 3종 경기와 더불어 이번 작품이 '인생 3대 극한 체험' 중 하나"라고 고백했다.

이어 "가해자의 엄마라는 인물을 맡으며 흑백논리를 넘어 인간의 미숙함과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며 "연습 때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아파 고열 상태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만, 2시간 30분의 공연이 끝나면 신기하게도 말끔히 나은 기분이 든다. 무대 위에서 비로소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양가감정의 미학

에반 플레이시 작가는 작품 제목을 '그의 어머니'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아들은 언론에 의해 '괴물'로 불리고, 브렌다는 졸지에 '괴물의 엄마'가 되어 개인성을 잃어버린다"며 "그의 아버지보다 그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사회적으로 더 파격적이고 가혹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또한 학교에서 화살로 동급생들을 살해한 아들을 그린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케빈의 엄마가 과거를 반추하며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짚어본다면, 브렌다는 범죄 이후의 순간에 서서 아들을 지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실존적 기로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연극 '그의 어머니' 한국 공연을 맡은 연출가 류주연. 국립극단 제공

연극 '그의 어머니' 한국 공연을 맡은 연출가 류주연. 국립극단 제공

류주연 연출은 "이 작품은 단순히 범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답이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느낄 수밖에 없는 양가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성찰의 문을 열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국립극단은 다음달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그의 어머니'를 이어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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