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 오페라 '사우디 머니' 수혈 무산에 재무 '비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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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비판 무릅쓴 승부수 무산으로 위기에 몰린 피터 겔브
현금 바닥에 기금까지 인출... 역대 최대 위기 몰려

피터 갤브, 뉴욕 메트 오페라 총감독 /사진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피터 갤브, 뉴욕 메트 오페라 총감독 /사진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가 사상 최악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인권 논란까지 감수하며 추진한 '사우디 자본 유치' 승부수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뉴욕 메트는 지난 2025년 최악의 재무 위기에 빠져 사우디 아라비아와 1억 달러(1389억원) 규모의 업무 협약을 체결하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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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막 동아줄로 여겨졌던 우디와의 파트너십이 최종 결렬되면서,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기려던 갤브 단장의 행보는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로 막을 내렸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와 오페라와이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메트의 피터 갤브 단장이 수개월간 공들여온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와의 대규모 협력 계약이 최종 무산됐다. 메트가 사우디 현지 오페라단 창설 자문과 제작 노하우를 전수하는 대가로 막대한 후원금을 수혈받으려던 이 계획은, 사우디 측의 전략 수정과 내부의 윤리적 반발에 부딪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사우디와 메트 간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 격화된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중동 정세를 뒤흔들면서, 사우디 정부가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추진하던 문화 소프트파워 확장보다 국가 안보와 군사력 증강으로 예산 우선순위를 대대적으로 조정한 것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사우디 입장에선 당장의 안보 위기 속에서 미국 예술계에 대한 거액의 후원은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는 분석이다. 이로써, 사우디라는 구원 투수가 사라진 메트는 이제 장기적 존립의 근간인 기금(Endowment)까지 헐어 써야 하는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됐다.

피터 갤브, 뉴욕 메트 오페라 총감독 /사진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피터 갤브, 뉴욕 메트 오페라 총감독 /사진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갤브 단장은 그간 인권 논란이 따라다니는 사우디 자본 유치에 대한 비판에 맞서 "예술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정면 돌파를 고수해 왔다. 하지만 이번 협상 결렬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며 그의 리더십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사우디의 자금 수혈을 전제로 설계된 차기 시즌 운영 계획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메트 오페라의 경영 불확실성은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가다.

‘미래 자산’에 손댄 메트 오페라… 사실상 현금 고갈 상태

더욱 심각한 것은 메트의 현금 유동성 위기다. 자금 흐름이 막힌 메트는 최근 이사회 승인을 얻어 기금(Endowment) 원금에서 4000만 달러(550억원)를 긴급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은 장기적 존립의 근간이자 보존이 원칙인 핵심 자산이다. 이를 운영비로 사용하는 것은 ‘오늘의 생존을 위해 내일의 뿌리를 뽑는’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기금 원금 인출은 이사회의 엄격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사회가 이례적으로 이를 허가했다는 것은 메트의 현금 유동성이 사실상 바닥났음을 방증한다. 문제는 기금 원금 감소가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져 향후 외부 차입이나 추가 기부금 유치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영구 보존’을 전제로 거액을 쾌척했던 고액 기부자들의 신뢰를 저버림으로써, 향후 기부 철회나 후원 중단이라는 ‘도미노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대화' 승부수의 역설… 재정 악순환의 늪으로

메트의 절박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재정난이 심화되자 메트는 로비에 걸린 마르크 샤갈(1887~1985)의 대형 벽화 두 점('음악의 승리', '음악의 수호신')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세계적 문화 자산을 담보로 현금을 빌려야 할 만큼 메트의 금고가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팬데믹 이후의 관객 회복 지연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제작비 폭등은 메트의 숨통을 지속적으로 조여왔다. 여기에 겔브 단장이 야심 차게 추진한 ‘현대 오페라 비중 확대’ 전략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신작에 대한 티켓 판매 부진과 보수적인 기존 기부자들의 반발이 맞물리면서, 재정적 악순환의 늪이 깊어졌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나비부인>의 한 장면 / ⓒEVAN_ZIMMERMAN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나비부인>의 한 장면 / ⓒEVAN_ZIMMERMAN

글로벌 오페라의 심장부로 불리는 메트의 위기는 미국 예술 단체의 경영난을 넘어 전 세계 오페라 산업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음이다. '오일머니'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사라진 메트는 이제 제작비 절감과 공연 횟수 축소라는 가혹한 구조조정의 시험대에 올랐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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