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지만 동시에 놀랍기도 했다. 이미 1, 2심 법원은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1심은 만장일치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상호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는 대통령 권한 밖의 조치이며 의회의 과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대법 판결도 그 연장선이었다.
그럼에도 실제 대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웠다. 미 대법은 현재 보수 우위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3명이 진보다. 보수 측 3명은 트럼프 집권 1기 때 임명됐고 대법원장도 보수 성향이다. 게다가 상호관세는 트럼프 행정부의 간판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판결 전 관세가 무효화되면 “미국이 망할 수 있다”거나 “1929년 대공황급 충격이 올 수 있다”며 대법을 압박했다.
이뿐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IEEPA에 따라 지난해 1330억달러의 관세를 걷었고 10년간 예상 관세만 3조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세 수입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최대 2000달러를 나눠주겠다고 했다. 트럼프 관세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높이기 위해 현금 살포까지 꺼낸 것이다. 상호관세가 효력을 잃으면 그만큼 국고가 줄어들고 트럼프가 나눠주겠다고 약속한 돈도 그림의 떡이 된다.
상호관세 환급을 둘러싼 혼란도 문제다. 이미 상호관세를 돌려달라는 기업 소송만 수백 건 넘게 쌓여 있다. 대법으로선 판결 후 있을지 모를 소송 대란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따져보면 대법이 트럼프 손을 들어줄 이유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대법이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한 건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진영 논리에 사로잡히거나, 국민 여론 같은 외부 요인에 연연하지 않고 법리에만 매달린 결과다.
미국에서 과세는 의회 권한이다. 의회가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 한 행정부가 마음대로 과세할 수 없다. 이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에 새겨넣은 원칙이다. 우리 헌법의 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지만 미 헌법 1조1항은 ‘헌법이 부여하는 모든 입법권은 연방의회에 있다’이다. 그만큼 의회 권한을 중시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선 행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조변석개식으로 정책을 바꾸고 동맹국에조차 무자비하게 관세를 때리는 트럼프 시대엔 그런 위험이 더 커졌음은 물론이다.
미 대법은 이번 판결 때 ‘중대 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적용했다. 이 원칙은 과세와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선 행정부의 자의적인 확대 해석을 허용하지 않고, 의회가 명시적으로 권한을 위임했을 때만 인정한다는 법률 이론이다. 대법은 IEEPA 어디에도 행정부로의 과세권 위임이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았다고 봤다. 트럼프는 판결 직후 “극도로 반(反)미국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극히 미국적인 판결’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대법이 3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란 헌법 정신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집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 의회가 행정부 견제라는 제 역할을 못 하는 가운데 사법부가 미국 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진보 대법관뿐 아니라 보수 대법관 3명이 보수 대통령의 반대편에 섰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 중 2명은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이었다.
판결을 주도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그동안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소신 판결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자신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하자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없다”고 응수한 일화는 유명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임명됐다고 ‘오바마 판사’가 되고 트럼프 집권 때 임명됐다고 ‘트럼프 판사’가 되는 건 아니라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혹자는 미국을 ‘법률가의 나라’라고 폄훼하지만 행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독립적 사법부의 존재는 여전히 미국의 저력이다.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도처에서 흔들리는 시대에 미 대법 판결은 여전히 되새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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