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공산군에 맞서자 두 군대의 지휘 일원화가 긴요해졌다. 1950년 7월에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의 지휘를 국제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과 그의 위임자에게 맡겼다. 정세가 바뀌면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관리도 진화해 1978년에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설치됐다. 이 체제에선 국제연합군 사령관을 겸하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작권을 지녔다. 이처럼 두 군대는 75년 동안 협력해서 대한민국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다.
두 군대의 원만한 관계는 큰 전쟁에서 함께 싸운 역사에서 비롯했지만, 미군이 한국군을 육성했다는 사정도 거들었다. 미군은 한국군의 바탕이 된 국방경비대를 창설했고 전쟁에서 무너진 한국군을 다시 세웠다. 자연히, 체제와 교리에서 두 군대는 동질적이었다. 덕분에 두 군대는 신뢰와 협력이 깊었고, 한국군은 빠르게 자라났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자 전작권을 한국군이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퍼졌다. 마침내 노무현 정권은 전작권 환수를 추진해서 2012년까지 마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박근혜 정권에선 한국군의 역량이 갖춰졌을 때 환수하기로 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작권 환수를 공약했다.
찬찬히 살피면, 전작권 환수는 비합리적임이 드러난다. 온 세계의 안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미군으로선 특정 국가의 판단에 예속될 수 없다. 따라서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넘어오면, 두 군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가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우산에서 벗어나 독자적 우산을 펼 수 없다는 사정이다. ‘자주국방’과 같은 구호들에 끌리면, 우리 안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세력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세력으로 나뉜 지금, 한국이 미국의 보호를 벗어나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다. 오랫동안 독자적 군사력을 추구해온 프랑스조차 이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안으로 들어가서 미군의 우산에 의지한다. 핵무기까지 갖춘 프랑스가 그러한데, 우리가 어떻게 ‘자주국방’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자립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구매하겠다는 방안은 비현실적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자금이 든다는 점을 든다. 실은 구할 길도 없다. 첨단 무기들은 어느 강대국이나 우방에도 제공하기를 꺼린다. 설령 미국이 우리에게 공급하기로 결정하더라도, 긴 세월이 걸릴 터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외톨이가 되면, 북한의 위협에 맞서 우리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할 길은 더욱 아득해진다.
무기나 장비만큼 아쉬울 것은 정보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본질적으로 한반도 둘레에 대한 정보다. 미국은 범지구적 정보를 얻는다. 특히 미국은 2019년에 우주군(Space Force)을 창설했다. 지상 100㎞ 너머 우주는 지금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영역이다. 한 세대 뒤엔, 우주군의 역할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것이다. 거기서 얻어지는 정보들은 3차원적이다. 우리 영공에서 얻어지는 정보들론 본질적으로 2차원적이다.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유지되면, 미군 지휘관들을 통해 우리 군대도 미군이 얻는 범지구적 3차원 정보들을 이용하게 된다. 그런 정보가 없는 한국군의 지휘관들이 미군 지휘관들을 지휘하는 일은 너무 비합리적이어서, 논의할 가치가 없다.
이런 사정을 반영해서, 작년 11월에 양국 외교·국방 장관들은 “어떤 상황에선 전산 및 우주 위협(cyber and space threats)도 상호방위조약의 범위 안에 들 수 있다”고 해석했다.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과 환경의 변화에 맞춰, 한·미 동맹이 꾸준히 진화해 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만일 미군이 떠나면, 우리는 큰돈을 주고도 고급 정보들을 얻을 수 없다. 범지구적 3차원 정보들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군대가 점점 강성해지는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영토를 지킬 수 있겠는가?
위에서 살핀 것처럼, 전작권 환수는 우리에겐 파멸로 이끄는 환상이다. 안타깝게도, 파멸적일수록 환상은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