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부산이 고향인 지휘자 정명훈이 개관 1주년을 맞은 부산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한 이날 공연에서 마에스트로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들려줬다. 1년 전 부산콘서트홀 개관 공연 당시 연주한 바로 그 곡이었다.
베토벤의 '합창'은 순수 기악음악으로 채워지던 교향곡에 인간의 목소리를 더한 혁명적 작품이다. 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성악가와 합창단의 입을 빌려 "기쁨(Freude)"을 노래한 4악장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삶의 어두움마저 찬란한 순간으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위대한 자유 의지. 베토벤의 일생을 관통하는 이 메시지는 자칫 과잉된 해석으로 흐르기 쉽지만, 정명훈은 절제된 지휘로 베토벤의 숭고한 음악 세계에 깊은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1악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정명훈을 그대로 닮은 듯한 선율로 채워졌다.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삶의 전반부를 표현하듯 비장하게 질주하면, 바순과 클라리넷 등 목관악기는 부드러운 선율로 이를 감싸 안으며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다.
팀파니의 힘찬 타격으로 시작된 2악장에 이르러 분위기는 한층 명랑해졌다. 템포는 앞선 악장보다 빨라졌지만 마에스트로의 노련한 지휘와 여유가 오히려 가장 돋보였다. 특히 정명훈의 담백한 제스처에 맞춰 팀파니가 단호한 울림을 터뜨릴 때면 내적 희열이 짜릿하게 솟구쳤다.
나른한 선율의 3악장을 앞두고 정명훈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숨을 골랐다. 이윽고 흘러나온 평화롭고 한적한 멜로디는 앞만 보며 내달린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처럼 위로를 건넸다. 호른의 묵직한 울림에 이어 바이올린·첼로 등 현악기의 피치카토(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연주 기법)가 겹칠 땐 앞선 악장이 내뿜은 긴장감이 모두 녹아내렸다.
마침내 다다른 마지막 4악장.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베토벤이 멜로디를 붙인 곡이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어두운 화음도 잠시, 우리에게 익숙한 환희의 송가 선율이 오보에의 또렷한 음형을 타고 무대 위로 흘렀다.
하지만 진짜 전율의 순간은 인간의 목소리가 안겼다. 바리톤 박주성의 외침을 시작으로 소프라노 이혜지,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김정훈, 그리고 부산시립합창단과 울산시립합창단까지 90여명의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우며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떤 성부도 과도하게 도드라지지 않는 중용의 하모니였다.
거장 정명훈 역시 지휘봉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작은 불꽃을 그려내며 '그대의 길을 즐겁게 달리라'는 베토벤의 메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연말 단골 레퍼토리로 꼽히는 이 곡이, 한여름의 길목인 7월에도 이토록 완벽한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한 충만한 시간이었다.
허세민 기자

5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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