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품 1만개 필요한 아틀라스, 韓서 공급망 생태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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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6월 28일 오후 3시32분 한국경제신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에 게재됐습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사진=현대차·기아 제공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사진=현대차·기아 제공

경북 경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사 에스엘은 최근 미국 휴머노이드 개발사 보스턴다이내믹스 엔지니어를 상대로 1박2일 동안 ‘특별 과외’를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개발 중인 로봇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과정에서 다리가 자주 파손되자 ‘SOS’를 보냈다. 에스엘은 알루미늄 소재 변경과 구조물 보강 등 세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후 이 회사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다리 모듈 납품 계약을 맺었다.

한국이 세계 휴머노이드 부품 공급의 핵심 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뒤처졌던 한국이 로봇 관절인 액추에이터부터 배터리, 눈(라이다, 카메라), 두뇌(반도체), 팔다리 모듈(외장재) 등 로봇 부품 밸류체인 전반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로봇사의 공급망 구축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28일 부품업계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내믹스 임직원 10여 명은 이달 초부터 현대모비스와 화신정공, 에스오에스랩 등 10여 개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을 한 달 일정으로 돌고 있다. 이곳에서 부품 양산 가능성과 설계 역량 등을 집중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HL만도 역시 테슬라에 액추에이터와 관련한 다양한 시제품을 보내 테스트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등은 휴머노이드 기업과 배터리 납품을 논의 중이다.

한국이 로봇 공급망의 핵심으로 떠오른 이유는 현대자동차그룹 등과 구축한 자동차 부품 생태계 덕분이다. 로봇 부품은 모터와 가속기, 센서, 램프 등에서 자동차 부품과 60~70% 비슷하다. 한국은 설계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원하는 부품을 즉시 개발해 생산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차 부품사 30여 곳은 벌써 로봇 부품사 전환을 선언했다. 유승훈 보스턴컨설팅 파트너는 “기술은 일본과 독일이 더 우수할 수 있지만, 양산 능력이 뛰어난 한국이 로봇 시대의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이 로봇 밸류체인의 30%를 담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2040년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가 1800조원(모건스탠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약 600조원의 로봇 밸류체인을 맡는다는 얘기다.

공정·기술 70% 자동차와 겹쳐…조향·센서·램프 등 기술력 최강
적기 납품력·합리적 가격대까지…中 제재 속 美시장 선점할 기회

미국 휴머노이드 제조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실무진은 이달 초부터 한 달 일정으로 한국의 자동차 부품 기업을 샅샅이 훑어보고 있다. 올해에만 두 차례 이상 한국을 찾은 이들은 로봇 관절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와 로봇 손(그리퍼)을 개발하는 현대모비스뿐 아니라 로봇 팔·다리 등의 모듈 회사, 로봇 눈인 라이다 생산 업체 등 10여 개 회사를 방문했다. 2028년으로 예정된 연 3만 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생산을 앞두고 막바지 부품사 선정에 들어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께 로봇 부품사를 확정해 생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라며 “아틀라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당수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독] 부품 1만개 필요한 아틀라스, 韓서 공급망 생태계 구축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국에서 조달

한국이 아틀라스 등 휴머노이드 부품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로봇 설계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에 강점이 있는 미국 업체들이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로봇 생산과 부품 공급의 핵심 파트너로 점찍은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에 수십 년 동안 납품하며 소재 가공과 생산 실력을 쌓은 자동차 부품사들이 로봇 회사로 전환하면서 자연스럽게 로봇 부품 생태계가 갖춰졌다는 분석이다.

[단독] 부품 1만개 필요한 아틀라스, 韓서 공급망 생태계 구축한다

자동차 부품 회사가 로봇 공급망에 편입된 이유는 생산 공정과 핵심 기술이 60~70% 정도 겹치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제조 원가의 30~50%를 차지하는 액추에이터는 모터와 감속기, 제어기 등 자동차 전동화 부품에 사용되는 기술이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글로벌 로봇 회사 엔지니어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자동차 서스펜션용 컨트롤암 생산 기업 화신정공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알루미늄 경량화 기술이 로봇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로봇 무게를 100㎏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알루미늄 소재가 다수 쓰일 것”이라며 “이 회사의 경량화 기술이 휴머노이드의 다리 프레임과 관절 구조물, 몸체 모듈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라이다 생산 업체 에스오에스랩도 이달 방한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엔지니어들이 찾은 곳이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3차원(3D)으로 구현하는 센서로 로봇 머리와 몸체에 장착돼 사람과 장애물, 계단 등을 실시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자동차용 고정형 라이다와 센서 구조가 비슷해 아틀라스의 주요 납품처가 될 전망이다.

에스엘은 아틀라스용 헤드램프 납품 제안서를 냈다. 기존 주력 생산품이 자동차 램프인 만큼 아틀라스용 램프 제작에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아틀라스 생태계’ 구축한 韓 부품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한국 부품사로부터 입찰 제안서를 받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부품은 통상 5000~1만 개 수준. 현대차그룹과 거래 중인 부품 업체 가운데 소재 가공과 부품 설계, 양산 능력을 갖춘 회사를 상당수 방문한 상황이어서 공급망 리스트가 어느 정도 작성됐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협력사 성우하이텍은 아틀라스의 유력한 케이스(외장 덮개) 납품 업체로 꼽힌다. 미국 앨라배마 등에 현지 법인을 보유한 서연이화도 외장재 협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들이 보스턴다이내믹스 공급망에 편입되면 한국 기업이 로봇 관절과 눈, 머리(헤드램프), 몸체(케이스), 팔·다리(모듈) 등 대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에 4족보행 로봇 ‘스팟’의 액추에이터를 공급 중인 HL만도는 테슬라 옵티머스에 액추에이터 공급을 추진 중이다. 양산 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테슬라의 요구 조건에 맞는 시제품을 제작해 수시로 공급하고 있다. 중국 산화인텔리전트컨트롤스와 토푸그룹에 이어 세 번째 액추에이터 공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부품업체 삼현 역시 아틀라스용 액추에이터 납품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막 휴머노이드 생산을 시작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로서는 합리적 가격으로 부품 수만 개를 적기에 납품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을 것”이라며 “글로벌 부품사와 비교해본 결과 국내 업체가 경쟁력이 있다고 본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납품은 국내 부품사에 공급망을 선점할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휴머노이드 시장은 중국을 제외하면 아직 완제품이 거의 나오지 않은 초기 단계다. 미국 의회가 전기차,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휴머노이드 역시 중국산 제품 사용을 막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비중국 기업’ 공급망에 있는 한국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또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완성차업체 현지 부품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자동차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있는 한국이 로봇산업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업계 관계자는 “1등 업체에 납품한 경험은 다른 글로벌 기업과의 협상에서도 강력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정상원/양길성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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