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선관위, 회의록 안내려 ‘익명열람-익명제출-실명제출’ 3단계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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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국회에 익명 회의록 문건까지 만들어 대비했다
3단계 ‘꼼수’에 “책임 회피” 비판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2026.06.15 뉴시스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2026.06.15 뉴시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회의록 제출 요구에 3단계 대응 문건을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는 이 문건에 따라 모든 회의록을 익명 처리해 국회에 제출하는 등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3일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입수한 선관위의 ‘국정조사 특위 위원회의 회의록 제출 요구 시 대응방안 검토’ 문건에는 선관위가 국조특위에서 회의록 제출 요구에 ‘발언 선관위원 익명 처리 후 열람만 허용’, ‘익명 처리 후 회의록 제출’, ‘실명 회의록 제출’ 등 3단계 대응을 검토한 내용이 담겼다. 이런 실무 의견을 바탕으로 선관위원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가린 채 회의록을 익명으로 제출하기로 했다.

실제로 선관위는 국조특위의 요구에도 비공개 원칙을 들어 회의록 제출을 거부하다 23일 1차 기관보고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투표용지 인쇄 축소 지침이 논의된 지난해 11월 24일 회의록과 투표용지 부족 사태 대응을 논의한 6월 4일 회의록을 익명 처리한 뒤 제출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기존에는 회의록을 비공개해 오다 보니, 특위에서 의결해 요청하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3가지 방안을 폭넓게 작성한 것”이라며 “지금은 회의록을 익명 처리해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고 했다. 현행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이 직무상 비밀을 이유로 서류 제출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자료제출 기피, 책임 회피 의혹
독립기관 내세워 비공개 원칙 고수
국조 시작되자 “거부 법적근거 없어”
3가지 방안 담긴 대응 문건 작성… 선관위원 이름 가린채 뒤늦게 제출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왼쪽)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왼쪽)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국조특위에서 위원회 의결로 결정해 주시면 그 회의록을 제출하겠습니다.”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명할 국회 국정조사의 첫 기관보고가 열린 지난달 23일 강동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직무대리는 투표용지 인쇄 하한 기준을 50%로 축소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2025년 11월 24일의 회의록을 제출해 달라는 특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의 요구에 이같이 답했다. 서 의원의 회의록 제출 요구에 선관위가 특위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의록 제출을 거부한 것. 선관위는 첫 국조특위 기관보고에서 회의록 제출 거부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은 뒤에야 회의록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선관위원들의 이름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됐다. 국조특위 시작부터 상당수의 각급 선관위원들이 지각 출석하거나 불출석한 데 이어 자료 제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방안까지 검토하면서 책임을 피할 궁리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독립 저해” 회의록 제출 대응 문건 작성한 선관위

3일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확보한 A4용지 11쪽 분량의 ‘국정조사특위의 회의록 제출 요구 시 대응방안 검토’ 문건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회의록이 공개될 경우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의 기능과 활동이 현저히 저해될 우려가 있다’거나 ‘안건 찬반 여부 등이 공개됨에 따라 개인정보의 유출이 우려된다’는 등 각종 이유로 최대한 공개를 피하고 있다는 현행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검토 과정에서 선관위는 회의록을 제출하는 대신 열람하는 것으로 조율하거나 익명으로 제출하는 방법을 고려했고, 국가교육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다른 위원회가 회의록 제출을 거부하거나 비공개 열람한 경우들의 사례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건은 첫 국정조사를 8일 앞둔 지난달 15일 중앙선관위 의사담당관실이 작성했다. 선관위는 지난달 3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국회의 여러 의원실로부터 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 기준을 논의한 회의록을 요구받았지만 거부해 왔다. 2011년 참여연대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선관위 회의록과 관련해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회의 내용 공개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을 앞세운 것.

하지만 6월 8일 여야가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현실화하고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던 선관위는 회의록 제출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회의록 제출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워지자 선관위원의 이름을 가린 채 열람만을 허용하거나, 익명 처리한 회의록을 제공하는 방안, 회의록 전체를 공개하는 방안 등 3가지를 저울질한 것. 현행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과 국정감사·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조특위의 자료 제출 요구는 군사·외교·대북 관계의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이 아니면 거부할 수 없다.

● 늑장 제출에 ‘ 셀프 블라인드’

3가지 방안을 보고받은 8명의 선관위원은 회의를 통해 자료 제출 요구 시 익명 처리한 회의록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첫 국정조사날인 지난달 23일 당일 오전까지 특위위원들이 요구한 회의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국조특위 의결이 이뤄질 때까지 회의록 제출을 미룬 것.

특위 위원장인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서류 제출 요구의 건을 이미 의결했다”며 회의록을 제출하도록 하자 선관위는 그제서야 오후에 회의록을 제출했다. 하지만 회의록은 투표용지 인쇄 축소 방침과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한 선관위원들의 발언이 모두 익명 처리된 상태였다.

이를 두고 당시 선관위의 의사 결정 과정과 사태 이후 대응에 대한 특검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앞에서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지연작전까지 벌인 행태가 들통난 것”이라며 “선관위 개혁과 혁신을 위해서는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선관위에 대한 특검이 지체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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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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