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약세에 환전 꺼려
달러예금 넉달새 18% 급증
정부는 신속한 환전 요청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외환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은행 금고에 쌓이고 있다. 원화값 하락을 우려한 기업들이 환전을 미루면서 달러예금이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원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외환시장을 찾지 않고, 이에 따라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5일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기업 달러예금 잔액은 483억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3월 말 410억달러에서 4월 430억달러, 5월 449억달러, 6월 469억달러로 석 달 연속 늘더니 7월 들어 이틀 만에 14억달러가 더 유입됐다. 넉 달 새 73억달러, 약 18%가 불어나며 빠른 증가세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 한국의 월간 수출이 사상 처음 1000억달러를 돌파할 만큼 달러가 밀려들었지만, 그 상당분이 외환시장을 거치지 않고 기업의 예금 계좌로 직행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달러 파킹’이 외환시장 수급구조를 직접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수출기업이 받은 달러는 원화로 환전되는 순간 시장에 달러 매도 물량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원화값을 떠받치는 가장 기초적인 공급원이다. 그런데 기업이 환전을 건너뛰고 달러를 그대로 예치하면 이 공급이 통째로 사라진다. 경상수지 흑자가 아무리 쌓여도 장부 위 흑자일 뿐, 실제 시장에 도는 달러는 늘지 않는 것이다.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 등으로 달러 수요는 꾸준한데 공급이 마르니 원화값은 밀릴 수밖에 없다.
기업이 환전을 미루는 것은 달러 보유의 이익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화값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국면에서는 오늘 환전하는 것이 곧 손해다. 달러당 1400원대에 바꾼 기업과 1550원대에 바꾼 기업 간 원화 수취액 차이는 10%에 달한다. 여기에 한미 금리 역전이 장기화하면서 달러로 예금을 굴리는 편이 이자 측면에서도 불리하지 않다. 한 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에 예금하더라도 달러예금 이자율은 미국 이율을 일정 부분 반영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차익 거래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화값이 내려갈 것으로 관측하는 기업이 늘면서 원화 가치의 하락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원화 매력이 떨어지니 기업이 환전하지 않고, 이에 따라 달러 공급이 줄어 원화값이 더 떨어지는 순환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정부는 수출기업이 신속한 환전에 나서도록 당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산업통상부는 지난달 주요 수출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수출대금을 신속하게 환전해 해외 유보자금이 국내로 유입되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가 환율 대응 태스크포스를 꾸려 수출기업의 환전 현황까지 들여다보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자금 운용에 개입하는 것은 그만큼 달러예금 증가 현상이 외환 수급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방증이다.
다만 정부의 당부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달러예금 선호를 떨어뜨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처럼 원화 가치가 고꾸라지는 국면에서 기업이 즉각 환전에 나서는 건 그 자체로 경영 리스크”라며 “원화의 매력을 되살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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