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기억-애착 담긴 특별한 장소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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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135〉 금릉

영화 ‘경주’에서 주인공 최현은 경주를 떠돌며 과거의 기억과 다른 현실에 혼란스러워한다. 인벤트 디 제공

영화 ‘경주’에서 주인공 최현은 경주를 떠돌며 과거의 기억과 다른 현실에 혼란스러워한다. 인벤트 디 제공
금릉(金陵)은 지금의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로 동오(東吳),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여섯 왕조(六朝)가 차례로 도읍했던 곳이다. 당나라 이백은 여러 차례 금릉에 들러 많은 시를 남겼는데, 안록산의 난으로 양경(兩京·장안과 낙양)이 함락된 뒤 피란길에 쓴 다음 시도 그중 하나다.

시인은 금릉의 폐허에서 지난 왕조의 번화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비감해한다. 시에서 금릉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인이 의인화하여 ‘너(爾)’라고 부를 만큼 감정이 이입된 장소다. 시인은 다른 금릉 시편에서 사안(謝安)과 왕희지(王羲之) 같은 선망하던 과거 인물들을 떠올리고(‘登金陵冶城西北謝安墩’), 암울한 현실 속 자신의 처지에 대한 깊은 회한을 드러내기도 했다(‘登金陵鳳凰臺’). 이 모두는 금릉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애착으로부터 비롯했다.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2014년)도 신라의 고도(故都)인 경주가 무대다. 작품은 주인공 최현이 죽은 지인의 문상을 마친 뒤 7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경주를 떠도는 내용이다. 그런데 최현이 집착하는 경주의 기억과 경주에서 겪는 사건들은 모호하다. 과거 경주 찻집에 걸려 있던 춘화를 보았던 기억은 물론이고 경주의 고분 주변에서 우연히 만난 모녀, 점집 할아버지, 폭주족 등이 실재인지 환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영화는 과거를 상징하는 왕릉과 현재의 삶이 구분 없이 공존하는 경주라는 장소를 통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영화 속 경주는 실재를 넘어 최현의 상실과 욕망이란 내면을 비춰주는 심리적 장소로 기능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시 속 장소에도 시인의 개별적 특성이 투영돼 있다. 시인에 의해 금릉은 여섯 왕조의 흥망성쇠가 인생무상의 허무로 이어지는 회고의 장소 이미지가 되어 후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미국학자 스티븐 오언은 이백을 금릉을 읊은 최초의 진정한 시인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우리에게도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억과 애착이 담긴 특별한 장소들이 있다. 영화 속 경주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인은 금릉을 역사적 회고를 통해 자신의 삶과 내면을 돌이켜보는 곳으로 정착시켰다. 그런 면에서 금릉과 경주는 실재를 넘어 특별한 기억과 감정들을 위해 설정된 심리적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최현에게 경주의 기억처럼 이백에겐 금릉의 역사가 특별하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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