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의지가 아닙니다. 운명 같은 거예요.”
오는 7월 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도니제티의 광채(Éclat Donizetti)'를 제목으로 리사이틀을 여는 테너 김건우를 26일 서초동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이번 공연은 제목 그대로 도니체티 한 사람의 음악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잘 알려진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만 나열하는 형식이 아니다. 전반부는 도니체티의 가곡으로, 후반부는 오페라 아리아로 꾸며 도니체티가 이탈리아 벨칸토에서 프랑스 오페라 양식으로 나아간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영국 음악학자 로저 파커가 발굴해 정리한 도니체티의 미공개 자필 악보에 기반한 가곡들이다. 김건우는 “200년 전 곡들이 찾으면 많지만, 대부분은 그냥 사장돼 버린다”며 “이번 곡들은 새롭게 정리돼 세상에 악보로 나오기 직전 단계에 있다. 빛을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악보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이상한 해석을 넣지 않으려고요. 음악학자들이 이 음이 오기인지,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비튼 것인지까지 따져가며 정리한 악보잖아요. 그래서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도 최대한 살리려고 합니다. 어색하지 않게, 그러나 악보를 최선을 다해 따라가려고 합니다.”
이번 리사이틀은 김건우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기획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2020년 도니체티의 희귀 아리아만 모아 한국에서 연주하려 했다. 코로나19로 계획은 무산됐다. 이후 새롭게 발견·정리된 가곡들이 더해지면서 이번 프로그램은 더욱 발전적인 형태가 됐다.
"19세기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지만,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든 장본인이에요."
'벨칸토(Bel Canto)'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18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성악 발성법이자 창법의 스타일이다. 정교한 기교, 아름다운 음색, 완벽한 호흡, 우아한 감정 전달 등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등이 있다.
테너 김건우에게 왜 가에타노 도니체티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던 시기, 그에게 다시 길을 열어준 작곡가. 그리고 지금까지도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는 음악을 남긴 작곡가가 도니제티다.
김건우와 도니체티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국제 오페라 콩쿠르, 오페랄리아에서 1위와 청중상을 동시에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 우승 후 그에게는 세계 주요 극장의 제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곧장 주역 계약을 선택하지 않았다. 더 수련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결정은 쉽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영아티스트를 마치고 프리랜서로 나오자 그는 다시 신인이 돼 있었다. 그는 “메이저 콩쿠르 우승자가 아니라 영아티스트를 졸업한 새로운 신인이 돼 있더라”며 “그때 저를 원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너무 공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 시기에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이 이탈리아 베르가모 도니체티 극장이었다. 도니체티의 고향 베르가모에서 열리는 도니체티 페스티벌은 작곡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발굴하고 부활시키는 데 힘을 쏟아온 무대다. 그곳에서 김건우는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의 대타로 도니체티의 희귀 오페라 <니시다의 천사>의 주인공 레온 역을 맡았다.
'니시다의 천사'는 잠시 주춤했던 그의 커리어를 뚫어준 작품이었다. 김건우는 “도니체티 음악이 제 목소리에 맞다는 것을 공연에서 노래 부르면서 알게 됐다”며 “그때부터 10년 정도는 이 레퍼토리에서 못 벗어나겠구나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번 리사이틀 후반부는 바로 그 도니체티의 오페라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간다. 초기 성공작 <그라나다의 조라이다>에서 출발해 <로베르토 데브뢰>, <니시다의 천사>, <라 파보리트>, <순교자들>로 이어진다. 김건우는 “도니체티는 베르디처럼 초기와 후기의 차이가 극명한 작곡가는 아니었다”며 “자기 스타일을 수학 공식처럼 고수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다만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기며 그의 음악은 새로운 색을 얻었다. 이탈리아어의 선율에서 프랑스어의 감성과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번 프로그램의 중요한 축이다.
특히 ‘니시다의 천사’와 ‘라 파보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이다. ‘니시다의 천사’는 파리 르네상스 극장의 의뢰로 작곡됐지만 극장 사정으로 초연이 무산됐고, 이후 개작을 거쳐 ‘라 파보리트’로 다시 태어났다. 김건우는 두 작품의 음악적 차이를 두고 “들어보면 알 것”이라며 “알고 듣는 사람은 ‘이게 뭐지?’ 하고 느낄 만한 순간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벨칸토란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기술이 아니다. 그는 “가곡은 중립이고, 아리아는 몰입”이라고 개인적 접근 철학을 전했다. 가곡에서는 감정을 과장하기보다 음악과 언어 사이에서 균형을 지켜야 하고, 오페라 아리아에서는 인물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도니체티를 부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도 분명했다. “테크닉을 테크닉으로 안 보이게 하는 것.” 김건우는 “도니체티는 엄청나게 기술적인 음악”이라면서도 “기술 자체에 빠져 있으면 표현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고음과 빠른 패시지, 섬세한 레가토가 모두 필요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기술’로 먼저 보이는 순간 음악의 본질은 흐려진다는 설명이다.
김건우는 이제 벨칸토를 중심에 두면서도 조금씩 레퍼토리의 폭을 넓혀갈 계획이다. <연대의 아가씨>, <돈 파스콸레>, <몽유병의 여인>, <윌리엄 텔> 등 도니제티, 벨리니, 로시니의 벨칸토 오페라로 자신만의 위치를 구축해온 그는 최근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와 베르디 <라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를 시작으로 낭만주의 레퍼토리로의 길을 향해 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건우는 공연을 찾을 관객에게 인사를 전했다. “준비 열심히 했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도 회자될 수 있는 대단한 리사이틀을 만들겠습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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