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출범하는 독일 새 연방정부에서 기업인 출신 인사가 대거 장관으로 기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8일 기독민주당은 연립정부 구성 협약에 따라 배정받은 7개 장관직 인선을 발표하며 주요 경제 및 기술 부처에 민간 기업 경영진을 전면 배치했다. 신설되는 디지털·국가현대화부 장관에 유럽 최대 가전 유통기업 세코노미의 카르스텐 빌트베르거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메디아마르크트와 자투른 등 유럽 전역에서 1000여 개 전자제품 매장을 운영 중인 세코노미를 이끄는 빌트베르거 CEO는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기독민주당의 디지털 전략 자문을 맡아왔다.
에너지 정책 수장에는 독일 4대 전력회사 에온(E.ON)의 자회사 베스트에네르기 CEO인 카테리나 라이헤가 내정됐다. 라이헤는 1998년부터 2015년까지 기독민주당 연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2019년 민간 에너지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하기 전까지 원전 추가 건설을 주장했다. 차기 연정을 주도하는 기독민주당은 선거 기간 탈원전 정책 폐기 검토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외교 수장은 요한 바데풀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원내부대표가 맡는다. 예비역 중령 출신인 바데풀은 안보 및 대러시아 강경 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중도 보수 성향 인사가 외무장관을 맡는 것은 1966년 이후 59년 만이다. 총리실을 총괄하는 특임장관 겸 실장에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토르스텐 프라이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원내대표가 지명됐다. 이 밖에도 교통장관에는 파트리크 슈니더, 교육·가족·여성·청소년 담당 장관에는 카린 프리엔, 보건장관에는 니나 바르켄 등이 내정됐다.
자매 정당인 바이에른주 기반의 기독사회당은 같은 날 내무장관에 알렉산더 도브린트, 연구·기술·우주부 장관에 도로테 베르, 농업장관에 알로이스 라이너를 내세웠다.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 역시 7개 장관직을 배정받는다. 라르스 클링바일 사회민주당 공동대표가 부총리 겸 재무장관에 내정될 가능성이 유력하며, 국방장관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현 장관이 유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은 이날 각각 임시 전당대회를 열고 연정 협약을 최종 승인했다. 사회민주당은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달리 연정 참여 여부를 당원 35만7000명을 대상으로 전체 투표에 부쳤다.
독일을 포함한 일부 서구 국가는 민간 경영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있어 기업인 출신의 정계 진출이 비교적 흔하다. 미국에서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기업인이 장관으로 기용되려면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보유 자산을 백지신탁하거나 처분해야 해 현실적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특히 경영권과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인일수록 정치 참여가 까다로운 구조다.
독일의 이번 연정은 지난해 11월 사회민주당 중심의 ‘신호등 연정’이 붕괴한 뒤 지난 2월 조기 총선을 통해 재편됐다. 새 정부는 다음달 6일 연방의회에서 메르츠 대표가 총리로 공식 선출되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각료들을 임명해 출범한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