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달러' 시대 급진전…원화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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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달러' 시대 급진전…원화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이달 초에는 미국 하원을 어렵게 통과한 지니어스법, 즉 스테이블 코인 규율 법안이 상원마저 통과할 것이 확실시된다.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뒤 시행에 들어가면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국민의 화폐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신용 화폐’에서 ‘디지털 화폐’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될 확률이 높다.

스테이블 코인의 골격은 이렇다. 대상 코인의 가치는 미국 국채를 담보로 하되 달러화와 1 대 1로 태환을 보장해 안정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의 금 본위제와 비슷하다. 금이 코인으로 바뀔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위기 이후 쌍둥이 적자가 확대되고 달러 가치가 흔들리자 대안으로 금 본위제를 주장해 왔다.

한동안 전략자산 비축안을 검토하다가 이 안을 선택한 것은 트럼프 정부가 당면한 대내외 현안이 워낙 급하고 뚜렷한 해결책도 안 보이기 때문이다. 이달로 다가온 ‘X-date’(국가부도 예정일)를 앞두고 국채 발작이 발생하고 국채 금리가 올라가는 것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달러 가치도 너무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마저 돌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관세를 통한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밀리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가격 할증 수단인 관세정책은 태생적으로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관세 피해국이 자국 통화를 절하하는 가격 할인 수단으로 맞대응하면 무력화된다.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지난 2월 초 이후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대폭 절하했다.

지니어스법과 함께 시행에 들어갈 신시아루이스법 시나리오대로라면 미국은 현재 20만 개 내외인 비트코인 보유를 100만 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실행에 들어가기만 하더라도 가장 시급한 국채 수요를 늘려 국채 발작을 방지하고 국채 금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과 하반기에 불가피하게 늘어날 국채 발행에도 대처가 가능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구상하는 디지털 달러화(CBDC)와 별도로 스테이블 코인이 활성화되면 디지털 달러라이제이션이 빠르게 진전될 확률이 높다. 디지털 위안화를 통한 중국의 기축통화 야망이 법정 화폐 단계에 왔더라도 무력화할 수 있다. 보유량 증대 과정에서 가격이 높아진 비트코인을 차익 실현하면 재정적자와 국채 채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디지털 달러' 시대 급진전…원화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민간에 맡기면 물가 안정은 어떻게 도모하고 시뇨리지(seigniorage·화폐 발행 차익)는 누가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따른다. 투기, 불법 거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금융 시스템도 불안해진다. 최악의 경우 권력층의 부정부패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신정부가 출범하면 한국도 원화의 스테이블 코인 도입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채를 담보로 원화와의 태환성을 보장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국채의 담보력, 중심 통화 위상 등을 고려하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도입하더라도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더 선호될 확률이 높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도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변해야 한다. 앞으로 전개될 디지털 화폐 시대에 맞게 한은 목표를 물가 안정으로만 고집할 것인가를 검토하고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을 잃지 않는 방안도 보완해야 한다. 경기순환 주기의 ‘단축화’(shortening)와 진폭의 ‘순응성’(procyclicality)에 맞게 통화정책 수단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시장과의 교감 차원에서 우리도 점도표 등을 공식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통화정책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정책 전달 경로상 중간 표적변수 개발, 경제 예측력 제고, 새로운 통화지표 개발, 코인 등 대안 화폐 활성화에 따른 법화의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리디노미네이션 단행 여부, 중앙은행 독립성과 중립성 유지 등 다양한 과제를 사전에 준비해 놓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정책금리 변경만을 놓고 만지작거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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