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 하루 수입이요? 잘 벌면 2만원이에요. 못 벌면 자판기 커피 한 잔이 전부죠.”
지난 15일 서울역 입구 앞에서 하얀 종이컵 하나를 두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50대 남성 김 씨는 스스로를 “2년 전까지 중견기업 과장이었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며 하루에 수천 원 벌어 살아가는 신세다. 그를 거리로 내몬 건 ‘암호화폐(코인)’였다. 그는 “직장도, 집도, 가족도, 나 자신도 다 잃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짧게 소개해 주세요.
경기도 시흥에서 기계설비 관리하는 회사에 다녔어요. 20년 정도 근무했고 과장까지 달았습니다. 그때는 연봉도 한 5000만원 정도 받을 때라 사람 구실은 한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하루 커피 한 잔 값 벌려고 서울역에 앉아 있어요.(하하)
▷직장 다닐 땐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아침 7시 반에 출근해서 퇴근은 9시쯤 했어요. 기계 고장 나면 야근이고, 주말에도 호출받으면 나갔죠. 경기가 계속 어려워지니 승진은 끊기고 직급에 변화가 없어졌어요. 연봉도 수 년째 제자리였어요. 점심시간에도 일하는 날이 많았고요.
▷직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요?
사람 취급을 못 받는 느낌? 고장 나면 왜 못 고치냐고 쪼고, 고치면 당연하다고 하고. 성과급 대신 ‘내년엔 잘해보자’란 말만 반복됐죠. 20년 넘게 일했지만 직장에 미래가 보이질 않았어요.
▷과장이면 사내에서 어느정도 높은 직급 아닌가요?
직급이 애매한 위치죠. 아래에선 윗사람이고, 위에선 그냥 부려먹기 좋은 사람이죠. 사무실에선 "과장님~" 하면서도, 회식 자리 가면 저 혼자 분위기 띄우는 담당이었어요. 부장 눈치 보면서 술 따라야 하고, 후배들 앞에선 센 척해야 하고. 하루는 회식 끝나고 집에 들어갔는데, 딸이 방문을 쾅 닫으면서 저한테 “또 술 냄새나”라고 소리치더라고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하고, 방에 들어가 양말 벗으면서 혼자 울기도했어요.
▷어떻게 코인 투자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우연히 유튜브에서 봤어요. 30대 직장인이 퇴사하고 하루에 수백만 원 벌었다는 영상. 저도 ‘한 번은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 유튜버를 따라서 투자하니 처음에는 정말 잘 됐어요. 루나 사태 전까지 1억 원 가까이 벌었습니다.
▷그 뒤에는요?
욕심이 문제였죠. 대출까지 끌어다 넣었고, 신용카드 돌려막기도 했어요. 폭락장이 지나가고 정신차려보니 4억원이던 통장잔고가 0원이 됐고, 제 인생도 같이 끝났어요. 삶에 의욕이 떨어지면서 무단결근을 반복했더니 회사에선 제정신이 아니라며 퇴사를 권고했고, 아내는 “도박 중독자”라며 곁을 떠났어요.
▷당시 감정은 어땠나요?
망했다는 생각보다 허무했어요. 그동안 버텨왔던 회사생활과 가족들이 한순간에 아무 의미 없어진 기분. ‘이럴 거면 그냥 일찍 그만둘 걸’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서울역에 처음 왔을 때 심정은요?
처음엔 쪽방이라도 구해보려고 했는데, 신용불량자라 보증금도 못 내니 몇일 있다가 쫓겨났어요. 차가운 서울역 지하 길바닥에 처음 누웠을 땐 진짜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더라고요. 멍했어요.
▷지금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시나요?
구걸이에요. 출근 시간, 점심 시간 맞춰 자리에 나가 종이컵 놓고 있어요. 저는 겉보기에 아픈 곳도 없고 몸이 건강해서 많이 벌면 만 원, 평균은 7000원 정도 벌어요.
▷밥은 어떻게 해결하세요?
무료 급식소로 가요. 고기 반찬이 나오면 감사하고, 라면이면 면발을 일부러 불려서 먹어요. 좀 더 오랫동안 배라도 부르게요. 하루 끼니를 다 먹을 수 있으면 잘 사는 날이죠.
▷노숙자 사이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나요?
있어요. 자리가 정해져 있고, 암묵적인 규칙도 있고. 정보도 공유하고요. “오늘 어디가 맛있는 반찬이 나와”, “단속 나오니 여긴 피해야 돼” 같은 거. 저보다 오랫동안 여기서 생활한 형님들이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은?
딸 결혼식 날요. 어떻게 소식은 전해들었지만 안 갔어요. 깔끔한 양복도 없고, 축의금도 없고, ‘저 꼴로 가면 민폐다’ 싶었죠. 결혼식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괜히 제 탓 같았어요.
▷다시 일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하실 건가요?
모르겠어요. 다시 일어설 용기가 안나요. 일어서면 또 좌절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너무 지쳐서 모든걸 포기해버린 마당에... 이 나이에 신용불량에 주소지 없으면 아무 데서도 안 써줘요. 노숙인 공공일자리도 신체검사 통과 못 하면 떨어져요. 저는 떨어졌어요.
▷요즘 가장 두려운 건 뭔가요?
건강이요. 체력이 점점 안 따라줘요. 비 오는 날 골병 들어서 누워 있으면 그냥 이대로 죽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
▷누군가 도와준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주민등록 복구요. 주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병원도, 일자리도, 복지 신청도. 그 다음은 목욕이랑 이발이요. 지금 제 얼굴이 어떤지도 잘 모르겠어요.
▷코인 투자에 대한 후회는요?
그땐 마지막 희망 같았어요. 지금은 그냥 사람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됐죠. 저처럼 된 사람 많아요. 다들 부끄러워서 말 못 하고 앉아 있을 뿐이죠.
▷지금 가장 필요한 게 있다면?
그냥 다시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디에 소속돼 있고, 누가 제 이름을 불러주고, 내 역할이 있는 삶이요.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 한 방은 없어요. 저처럼 “한 번은 날아봐야지” 하다가 땅바닥에 처박힐 수도 있어요. 회사 힘들다고, 상사 보기 싫다고, 그만두고 싶을 수 있죠. 근데 그게 끝은 아니더라고요. 지금 내 자리가 볼품없어 보여도 막상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돼요. 한 번 바닥을 찍으면 다시 올라오는 건 진짜 힘들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했지만 매일 퇴사를 고민하는 30대 청년,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제2의 삶을 개척한 40대 가장,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70대 청소 노동자까지. '직업불만족(族)'은 직업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당신의 평범한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깊은 위로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 모든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제보와 구독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