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미국 정부가 12일(현지시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쥐고 서방 국가들을 압박하는 모양새였다면, 이번 조치는 미국이 공세를 전환해 역봉쇄를 통해 이란의 숨통을 직접 조이겠다는 전략이다. 그간 미국이 국제유가 급등을 우려해 이란 유조선의 통과를 일정 부분 묵인해 온 것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트럼프 정부가 단기간 승리로 끝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이란전이 길어지자 세계경제 타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란의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호르무즈 봉쇄”
중동 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이란 항구로 들어가거나 이란 항구에서 나오는 모든 해상 교통을 13일 오전 10시부터 봉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은 비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들의 항행은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중부사령부는 성명에서 “이번 봉쇄는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에 있는 모든 이란 항구를 포함해, 이란 항구 및 연안 지역에 진입하거나 그곳에서 출항하는 모든 국가의 선박에 대해 공정하게 집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트루스 소셜을 통해 “즉시 발효된다. 세계 최강의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에 들어가거나 그곳을 떠나려는 모든 선박에 대한 봉쇄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협상의 교착 상태를 깨기 위해 이란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이란의 모든 다리와 발전소를 폭격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다만 실제 이란에 대한 공습을 재개할지는 불분명하다.
이란 자금줄 차단 의도
트럼프 대통령의 봉쇄 위협은 이란의 핵심 수입원인 원유 수출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쥘 경우 이란 정부와 군사작전의 재정 기반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폐쇄된 상태는 아니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 유조선의 통과를 일정 부분 묵인해왔다. 중동 지역에서 원유 공급이 유지돼야 유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3월 이란산 원유 판매를 허용하는 한시적 라이선스를 부여하며 시장 공급을 확대했다.
이를 틈 타 이란은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일부 유조선 통과를 허용하고 있으며, 자국 원유 수출도 지속하고 있다. 에너지 데이터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이란은 3월까지 하루 평균 185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으며, 이는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한 수준이다.
하지만 제재 완화는 트럼프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이란이 원유 판매를 통해 전쟁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이란은 브렌트유보다 높은 가격에 원유를 판매하며 상당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유가 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과 러시아산 원유 제재 완화 등 다양한 조치를 병행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책 방향이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 상승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이란에 대한 압박을 극대화해 전쟁을 조기에 끝내겠다는 전략으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 타격 불가피
트럼프 행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 선언이 알려지면서 국제 유가는 또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은 약 8% 오른 배럴당 104.20달러, 브렌트유 6월물은 약 7% 오른 배럴당 101.86달러를 기록했다.
이번 조치는 이미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가 충격과, 걸프 지역 국가들이 심각한 국내총생산(GDP) 감소 압력에 직면한 상황에서 세계 경제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글로벌 경제 전반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주요 공항에서는 항공유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정상적인 재고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걸프 지역 국가들의 경제적 피해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충격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별로는 카타르의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1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아랍에미리트는 8%, 사우디아라비아는 6.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 미사일 위협 우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가 이란을 더욱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정보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란은 여전히 수천 발의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하 저장소에서 발사대를 꺼내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 발사 능력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지만, 전쟁 초기 며칠 동안 하루 수십 발에 달했던 발사 횟수를 전쟁 기간 대부분 동안 하루 10~15발 수준으로 줄인 것은 상당한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이란 공격으로 타격을 입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서 송유관의 원유 수송 능력을 하루 약 700만배럴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가 이날 보도했다. 동서 송유관은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 얀부까지 원유를 수송하는 약 1200km 길이의 대형 파이프라인이다. 페르시아만을 거치지 않고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육상 경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에서 대체 수출 통로 역할을 한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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