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이던 푸틴, 시진핑의 ‘을’이 됐다”…WSJ, 중·러 관계 역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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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5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5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힘의 균형이 크게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정치적 본보기로 삼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제는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좌우하는 위치에 섰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 중국, 러시아 관계자들을 취재한 장문의 분석 기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를 중국의 대등한 전략 파트너가 아니라 중국에 더욱 의존하는 국가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해 ‘시베리아의 힘 2(Power of Siberia 2)’ 가스관 계약 타결을 기대했다. 유럽 시장을 사실상 잃은 러시아로서는 중국이 가장 중요한 천연가스 수출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 국내 판매가격 수준의 낮은 가격을 요구했고, 양측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WSJ는 전했다. 푸틴은 수십 건의 협력 협정을 체결했지만 가장 절실했던 에너지 계약은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 “중국엔 러시아가 선택지…러시아엔 중국이 생명줄”

WSJ는 양국의 경제적 의존도가 이미 크게 역전됐다고 분석했다.

현재 러시아 전체 교역의 약 40%는 중국과 이뤄지고 있는 반면, 중국 전체 교역에서 러시아 비중은 4%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할인된 가격에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중국 시장 없이는 에너지 수출 자체가 어려운 구조가 됐다. 반면 중국은 중동과 호주, 카타르 등 다양한 에너지 공급선을 확보하고 있어 러시아와의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크지 않았다.신문은 “중국은 러시아를 필요로 하지만, 러시아가 중국을 필요로 하는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한쪽은 중국 시장이 사실상 생명줄이 됐지만, 중국 입장에서 러시아는 여러 교역 상대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과거 시 주석은 강력한 권위주의 통치와 자원 외교를 펼치던 푸틴을 정치적 롤모델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양국 관계의 주도권이 사실상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WSJ는 분석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예프 소장은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중국의 ‘거대한 파키스탄이나 라오스’와 비슷한 처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비유했다.

● 가스부터 금융까지…중국 영향력 확대

중국은 에너지 거래뿐 아니라 금융과 중앙아시아 영향력에서도 러시아를 앞서기 시작했다.

WSJ는 중국이 위안화 중심 금융망 확대와 중앙아시아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과거보다 훨씬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금융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가 중국 금융 시스템과 위안화 결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자국 영향권으로 여겼던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며 상하이협력기구(SCO) 개발은행의 위안화 중심 운영에도 반대해 왔다. 그러나 금융 고립이 심화되면서 결국 이를 사실상 받아들이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고 WSJ는 전했다.

가부예프 소장은 중국이 “러시아 경제가 더 악화돼 진짜로 무릎을 꿇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러시아 경제가 더 악화될수록 중국이 협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밀착 속에서도 균열…“북한 문제는 변수”

양국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WSJ는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이 확대되면서 중국 내부에서는 불편한 기류도 감지된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의 기술 이전으로 북한의 핵무기나 잠수함 능력이 강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한미 간 균열을 활용해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장기 전략에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WSJ는 중국이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은 유지하면서도 북한 문제에서는 푸틴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러시아와 독자적으로 밀착할수록 중국의 전통적인 대북 영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지난 6월 7년 만에 직접 평양을 방문했다. 이는 북한의 최대 후원국은 여전히 중국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재확인하려는 의도가 담긴 행보였다고 WSJ는 분석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를 대북 지원 확대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워 왔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원칙도 사실상 뒤로 미루는 모습이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윤선 중국프로그램 국장은 WSJ에 “중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모든 대북 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이번 변화를 단순한 중·러 밀착이 아니라 양국 관계의 ‘권력 역전’으로 해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중국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고, 중국은 경제와 금융, 에너지 협상 전반에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며 양국 관계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것이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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