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국내 딥테크 창업팀 사이에서 미국 법인을 먼저 세우거나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탈(VC) 투자와 글로벌 고객 확보, 향후 후속 투자까지 고려해 초기 단계부터 법인 구조를 해외 중심으로 설계하는 모습이다.
![[마켓인] 시드부터 美 법인…딥테크 스타트업 ‘글로벌 직행’](https://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26/06/PS26062600144.800x.0.png)
25일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시드 투자를 유치한 인공지능(AI)·딥테크 관련 기업 가운데 최소 7곳이 미국에 법인이나 본사를 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상반기 100억원 이상 시드 투자를 유치한 이른바 '메가시드' 스타트업 4곳 가운데에서도 컨피그인텔리전스와 펜시브 등 2곳이 미국 거점 기업으로 나타났다.
컨피그인텔리전스와 펜시브는 한국계 창업진이 세웠지만 미국 법인을 중심으로 투자와 사업을 설계한 곳이다. 서민준 대표가 이끄는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 컨피그인텔리전스는 지난 5월 400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회사는 글로벌 AI·로보틱스 생태계와 한국 제조 기반을 동시에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2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먼저 설립됐고, 이후 한국 법인을 별도로 세웠다.
AI 교육 스타트업 펜시브 역시 양윤석 대표가 창업한 한국계 스타트업이지만,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해 있다. 펜시브는 올해 2월 687만달러, 약 100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시드 라운드는 실리콘밸리 VC 메이필드가 주도했으며 세콰이어캐피탈 스카우트펀드와 a16z 스카우트펀드, 베이스벤처스 등 글로벌 VC가 참여했다.
이 같이 한국계 창업기업의 미국 법인화 흐름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4월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인 및 해외 한인 창업 스타트업은 193개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83.4%는 처음부터 미국에서 창업한 현지 창업 기업이고, 16.6%는 한국에서 출발한 뒤 미국으로 본사를 옮긴 '플립' 기업이다. 또한 전체의 66.2%가 프리시드·시드 단계로, 절반 이상이 초기 단계부터 미국에 거점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기업들이 미국 법인 설립을 검토하는 가장 큰 배경은 자금 조달이다. 국내 시장은 규모가 작고, 초기 딥테크 기업이 기술의 확장성만으로 대규모 투자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정부 정책 역시 해외 법인이 투자를 받는데에 불리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었다.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2024년 창업지원법 개정으로 한국인이나 국내 법인이 해외에서 창업하거나 해외법인 전환, 이른바 '플립'을 한 경우에도 창업지원사업 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한국인과 국내 법인이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해 실질적 지배력을 갖는 국외 창업기업도 정책 지원 대상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와 미국의 투자자 저변도 다소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투자사들은 아직 제품이 초기 단계인 딥테크 기업에도 구체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특정 기술 분야를 전문적으로 보는 펀드가 많아 후속 투자까지 염두에 둔 자금 조달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이다.
한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미국에는 AI면 AI, 콘텐츠면 콘텐츠 등 특정 분야를 깊게 보는 전문 펀드들이 많아 초기 기업도 사업모델을 설명하기가 수월하다"며 "한국에서는 당장 매출이나 기존 산업과의 접점을 먼저 묻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 투자자들은 확장성을 더 본다"고 말했다.
투자나 사업 환경 외에도 대기업과의 협업 과정에서 느낀 불신도 해외 진출을 검토하는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딥테크 기업은 장기적으로 대기업과의 협업이나 인수합병(M&A)이 필수적이지만, 대기업 중심인 국내 산업 생태계에서 스타트업이 정당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기술이 어느 정도 개발돼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 대기업이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거나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한국은 시장 자체가 작고, 수요가 제한되다 보니 결국 큰 기업의 이해관계에 맞춰 투자나 후속 사업이 돌아가는 느낌"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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