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파, 일상에서 역사를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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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파, 일상에서 역사를 포착하다

전쟁·재난 아닌 생활상 담아
사진 다큐멘터리 문법 바꿔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회고전
서울·평양 비교한 연작 눈길
소비사회 민낯, 유머로 포착

마틴 파가 1997년 패키지 여행으로 방문한 평양에서 군인 품에 안긴 아이를 촬영한 '평양'(왼쪽)과 2004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촬영한 '서울, 대한민국'.  서울시립사진미술관

마틴 파가 1997년 패키지 여행으로 방문한 평양에서 군인 품에 안긴 아이를 촬영한 '평양'(왼쪽)과 2004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촬영한 '서울, 대한민국'. 서울시립사진미술관

1997년 영국 사진가 마틴 파는 패키지 여행을 통해 북한 평양을 찾았다. 김일성 동상 앞에 줄지어 선 참배객, 빨간 스카프를 맨 아이들, 주체사상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까지. 정치적 상징과 평범한 일상이 뒤섞인 풍경을 담아낸 그는 훗날 "모든 것이 거대한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을 찾은 그의 카메라는 전혀 다른 장면을 기록했다. 서울의 대형마트의 한 쇼핑카트는 프링글스와 콘플레이크, 환타 등 형형색색으로 포장된 소비재로 가득 찼다. 체제는 극명하게 달랐지만 파의 관심은 정치보다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에 있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선보이는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는 남북한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포착한 그의 대표 연작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지난해 작가가 별세한 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사진 504점과 영상 1점, 사진책 90권 등 모두 595점을 전시한다. 그의 초기 흑백 작업부터 말년의 대표작까지 50여 년의 작업 세계를 아우른다.

마틴 파는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문법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전 세대가 전쟁과 혁명, 기아와 재난 같은 역사적 사건을 기록했다면 그는 슈퍼마켓과 해변, 패스트푸드점, 쇼핑몰, 관광지 등 예술 영역 밖에 있는 공간을 프레임 안으로 끌어왔다.

이 같은 시도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통념을 흔들었다. 그는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흑백 사진의 거장들이 설립한 보도사진가 단체 매그넘 포토스 소속으로 활동했는데, 1988년 준회원으로 파가 지명될 당시 내부에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안드레아 홀스헤르 매그넘 포토스 글로벌 컬처 디렉터는 "강렬한 색감과 특유의 풍자,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는 파의 시선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통념을 깨뜨렸다"며 "파는 역사가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작가는 현대인의 소비와 관광, 여가 문화를 포착하며 인간의 욕망을 관찰했다. 페루 마추픽추나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셀카를 찍느라 절벽 끝까지 다가간 여행객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대상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되 조롱하지 않고, 풍자하지만 냉소하지 않았다.

대표 연작 '작은 세계'는 세계 곳곳의 관광지를 누비며 서로 다른 문화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 결국 비슷한 사진을 찍고 같은 기념품을 사는 모습을 포착한다. 그는 쇠락한 영국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을 통해 여가마저 상품이 된 현실을 보여주는가 하면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무심한 연인들의 모습을 통해 권태를 유머러스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남한'과 '북한' 연작이다. 북한 연작 속 평양의 풍경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인지, 외부 시선을 의식한 연출인지 모를 긴장감을 자아낸다. 작가는 그 통제된 틈새로 엿보이는 일상의 표정을 담아냈다. 반면 남한에서는 고도성장기의 소비문화와 관광 풍경을 기록했다. 서로 다른 체제지만 그의 카메라는 거대한 이념보다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 머물렀다.

작가가 집요하게 기록한 음식 사진과 관광 인증샷, 쇼핑 풍경, 셀카는 이제 SNS에서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됐다. 한때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소비문화의 기록처럼 보였던 장면이 오늘날에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됐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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