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안은미, 파리 한복판에서 사람들과 손잡고 둥글게 춤추다

5 days ago 7

5월 23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 안은미의 '백만의 밤' 퍼포먼스에 참여한 사람들. ⓒJean-Marie Chabot

5월 23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 안은미의 '백만의 밤' 퍼포먼스에 참여한 사람들. ⓒJean-Marie Chabot

서울 리움 미술관을 무대로 바꿨던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이번엔 프랑스 파리 광장과 미술관을 퍼포먼스 공간으로 바꿨다. 파리 한복판에 쏘아올린 핑크빛 연무, 미술관 전체를 가득 메운 원무(圓舞),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관객들까지. 안은미는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을 박제된 전시장이 아닌 살아 꿈틀거리는 '상호조우체(Encounterface)'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5월 23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 안은미의 '백만의 밤' 퍼포먼스 참여자와 안은미가 인사를 하고 있다.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5월 23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 안은미의 '백만의 밤' 퍼포먼스 참여자와 안은미가 인사를 하고 있다.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안은미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립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Paris)에서 퍼포먼스 '백만(白蠻)의 밤'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유럽 뮤지엄의 밤 2026' 한국 특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백만의 밤 퍼포먼스 중 관객에게 손을 건네는 안은미.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백만의 밤 퍼포먼스 중 관객에게 손을 건네는 안은미.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공연은 오후 7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미술관 로비와 광장, 마티스 전시실, 알베르 아몽 홀을 가로지르며 펼쳐졌다. 안은미의 비전문가 참여 프로젝트 '1분 59초'의 역대 참가자 24명이 전시장 곳곳에서 홀로 돌기 시작하자, 관람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잡고 거대한 원 안으로 합류했다. 2016년부터 10년간 프랑스 시민들과 쌓아온 관계와 기억이 하나의 공동체적 춤으로 부활한 순간이다.

안은미가 주도한 '백만의 밤' 퍼포먼스를 위해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 모여든 사람들.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안은미가 주도한 '백만의 밤' 퍼포먼스를 위해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 모여든 사람들.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무대가 외부 광장으로 확장되자 압도적인 장관이 연출됐다. 핑크색 연막이 파리 상공으로 피어오르며 센 강을 넘어 에펠탑의 실루엣을 분홍빛 안개로 물들였다. 안은미는 이번 작업에서 색채를 단순한 시각 요소가 아닌 작동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는 "노랑은 조건, 파랑은 변형, 핑크는 발생"이라며, "나는 완성된 작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이번 작업의 본질을 설명했다.

퍼포먼스의 정점은 앙리 마티스의 걸작 <춤> 앞에서 이루어졌다. 마티스의 그림 속 인물들이 서로 손을 잡지 못한 채 허공을 부유했다면 안은미는 관객들의 손을 직접 잡아 실제 공간에서 원을 완성했다. 그림에서 이탈했던 땅의 자리를 회복하고, 캔버스 안의 멈춰진 움직임을 살아있는 인간의 호흡으로 연결해낸 것.

푸른색 물감을 입힌 밀가루 덩어리를 관객에 전달하는 안은미.  ⓒJean-Marie Chabot

푸른색 물감을 입힌 밀가루 덩어리를 관객에 전달하는 안은미. ⓒJean-Marie Chabot

마지막 무대인 알베르 아몽 홀에서 안은미는 바닥 위에 가득 펼쳐진 밀가루 위를 걷고 구르며 몸의 흔적을 새겼다. 그 위에 청색 물감이 부어지며 덩어리가 응결되자, 안은미는 이 반죽을 떼어 관객 한 명 한 명의 손에 쥐여주었다.

공연 내내 바닥에 축적된 몸의 움직임, 밀가루와 색채가 결합해 만들어진 사건의 잔여물을 관객의 삶으로 전이시키는 행위였다. 그날 밤의 사건이 관객의 손과 숨결 속에서 계속해서 춤추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다. 안은미가 일으킨 백만의 밤은 그렇게 관객들의 손바닥 위에 묵직하게 남았다.

23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 광장에서 안은미가 쏘아올린 핑크빛 연무.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23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 광장에서 안은미가 쏘아올린 핑크빛 연무. ⓒKorean cultural center in Paris

이번 퍼포먼스에 참여한 프랑스 현지 참가자 프랑수아즈 우엘슈는 안은미에게 건넨 편지에서 "1분 59초는 나를 움직임과 춤으로 이끈 근원적인 경험이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서투름과 실수들을 안고, 춤을 하나의 가능성의 장소로 대하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