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전기 있지만 인력·생태계가 없다…'호남 반도체 팹' 5대 쟁점

5 days ago 7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의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으면서다. 부지, 용수, 전력 부족 등 수도권 인프라 포화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수백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은 핵심 인력 확보와 팹을 떠받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구축 과정에서 짊어질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물·전기 있지만 인력·생태계가 없다…'호남 반도체 팹' 5대 쟁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5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호남 지역 반도체 팹 투자 방안을 구체화했다. 삼성전자는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민관합동회의 이후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호남 반도체 공장의 당위성을 에둘러 밝혔다. 이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수도권 1극 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좋은 변화의 태풍이 미풍에 그칠 수 있고, 상상조차 어려운 위기가 폭풍으로 변할 수 있다”며 “1극 체제 극복을 위해 첨단 핵심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영남이나 충청, 강원, 제주, 호남 등으로 확대하는 전력산업 다극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정부의 ‘지방 균형 성장’ 정책 기조에 호응해 전·후공정을 아우르는 최대 5개 공장을 호남과 충청권에 짓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호남이 주요 대안으로 부상한 것은 수도권 클러스터의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핵심 거점인 경기 용인 등은 대규모 추가 용지 확보가 어렵고, 대규모 전력과 물을 끌어오는 데 한계에 직면했다. 인프라 부족으로 투자가 지연되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폭발적 수요를 고스란히 놓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이들 기업의 막대한 투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파격적인 지원책을 꺼내 들었다. 산업통상부는 이날 입법 예고한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에서 전력, 용수, 도로 등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 시설 비용과 관련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총사업비의 50% 이상, 최대 전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호남 등 비수도권 신규 클러스터에는 부지 지정과 정주 여건 개선, 송전탑 대신 전력선을 땅에 묻는 지중화에도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호남 반도체 공장이 기정사실이 되자 정치권과 지자체도 시끄러워졌다. 앞다퉈 유치전을 벌이며 이전투구 양상마저 보인다.

국민은 정작 정치가 아니라 경제적 타당성을 궁금해한다. 팹 1기당 10만㎡ 이상 부지가 필요한 만큼 마땅한 땅이 있는지, 팹을 돌리기 위해 하루 평균 1기가와트시(GWh)의 전력과 20만t의 물을 끌어오는 게 가능한지 등이다. 이게 충족되더라도 3000명 넘는 전문 인력의 정주 여건과 수십 곳의 소부장 업체가 눌러앉을 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지 따지는 이가 적지 않다. 호남 반도체 공장이 ‘반도체의 나라’를 지탱할 또 하나의 축이 될지, 아니면 과잉 투자와 지역 한계의 부담으로 남을지가 냉정한 경제성 검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용인 맞먹는 부지 규모 '강점'…석·박사 인재 오느냐에 성패 달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경제성 따져보니

물·전기 있지만 인력·생태계가 없다…'호남 반도체 팹' 5대 쟁점

정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사실상 공식화하면서 사업은 ‘구상’ 단계를 지나 ‘실행’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업으로서는 지원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실질적인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성공 여부는 단순한 인프라 확보를 넘어 수천 개의 미세 공정이 단 1% 오차도 없이 24시간 내내 정밀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의 경제성을 판가름할 5대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1) 부지 - 탁월한 경쟁력
빛그린국가산단 등 선택지 많아

첨단 반도체 전공정 팹은 기당 10만㎡ 이상의 부지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 착공을 시작한 삼성전자 평택 P5 팹1의 면적은 13만㎡다. 변전소와 폐수 처리시설 등을 포함하면 필요 면적은 더 커진다. 이런 측면에서 광주는 탁월한 경쟁력을 갖췄다. 후보지로 거론되는 광주 첨단3지구(339만㎡), 빛그린국가산업단지(407만㎡), 군공항 이전 부지(826만㎡) 등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289만㎡)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415만㎡)와 맞먹는다.

(2) 용수 - 양보다는 질이 관건
고순도 공정 적합도 따져봐야

용수 확보 면에서도 호남은 용인 클러스터의 차선책으로 꼽힌다. 첨단 반도체 공장 한 곳이 하루 사용하는 물의 양은 수십만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용인 산단은 2050년 하루 109만t 이상의 용수 부족이 예상된다.

광주는 첨단3지구 인근에 있는 장성호와 영산강, 용연정수장 등을 활용해 팹 운영에 필요한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질’이다. 반도체는 나노미터(㎚·1㎚=10억분의 1m) 회로를 새기는 초미세 공정인 만큼 수질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영산강 수질이 고순도 공정에 적합한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검증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3) 전력 - 태양광·풍력 풍부
전력 불안정 보완할 ESS 필수

반도체 팹 한 기는 대형 원전 한 기의 생산량과 맞먹는 1기가와트시(GWh)급 전력을 소비한다. 24시간 가동이 필수인 팹에선 0.01초의 순간 정전조차 조 단위 손실로 직결되는 탓에 안정적인 전력망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총 전력 수요는 5.8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3·4기 팹에 공급할 전력원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자립도 197%(전남 기준)인 호남은 팹 유치의 최적지로 꼽힌다. 전력을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하는 영남권과 달리 호남은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기반의 잉여 전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양적 우위 이면에는 전력의 불안정성이라는 난제가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 변동이 커 미세한 전압 변화조차 허용하지 않는 반도체 공정에 치명적일 수 있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성을 보완할 전력망과 저장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과 송전망 보강,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 기저 전원과의 연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4) 인력 - 지속적인 유인책 필요
충분한 보상·정주여건 개선해야

메모리 등 전공정 팹 관리에 필요한 석·박사급 엔지니어 수천 명의 지방 근무 기피는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패키징 등 후공정과 달리 반도체 설계와 수율을 관리할 최고급 엔지니어를 호남 지역에 데려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업계에선 우수 인력이 내려갈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경기 평택·이천으로 본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가 충남 아산 탕정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구축할 당시 우수 인력이 지방 이주를 꺼려 고전한 사례도 있다.

이를 타개할 해법은 시장 논리에 따른 충분한 보상과 편의 시설 등 정주 여건 조성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성과급 등 확실한 유인책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정주 인프라를 결합하면 우려만큼 이탈률이 높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 호황기의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경험해본 엔지니어들에게 확실한 보상은 훌륭한 록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5) 생태계 - 규모의 경제로 가야
소부장 100여곳 동반 진출 과제

초격차 팹을 구축하려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사 50~100여 곳이 동반 진출해야 한다. 문제는 대기업에 비해 자본력이 부족한 협력사가 호남에 신규 시설 투자를 단행하기엔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할 열쇠는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 창출을 주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삼성전자가 텍사스 테일러 공장 건설을 추진하자 국내 협력사가 대거 합류했다.

김채연/하지은/강해령/이광식 기자 why29@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